한국일보

하얀 눈밭 작은 캐빈들‘동화속 풍경’

2010-04-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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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루문학회 ‘문학기행’- 빅베어 레익의 산장


시인 백석의 시 세계 공부 위한 여행
비 오는 LA 떠나 산 이르니 온통 눈세상
밤새 소복이 쌓인 눈만큼 회원 우정도 쌓여

오랜만에 발끝사이로 뽀드득 뽀드득 간지럽게 느껴지는 하얀 눈 위를 걷는다. 키 큰 노송 숲에서 묻어 나온 솔향기와 차고 청정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방금 떠나온 산 아래 세상이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듯하다.

남가주에 지난 몇 주사이 해갈을 할 수 있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지만 짧은 겨울에 LA에서 눈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1박2일이나 당일로 이곳에서 2시간쯤 운전해 나가면 풍성한 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아직도 많다
우리 글마루 문학회에서는 지난 존 스타인벡 생가 방문에 이어 1년에 2회씩 있는 문학기행을 빅베어 레익, 엔젤러스 오크(angelus oaks)에 있는 산장에서 갖기로 했다. ‘시와 눈이 있는 풍경’이란 주제로 시인 백석의 시세계와 삶을 조명해 보기로 했다. 출발 일은 1박2일 일정으로 2월 마지막 주말로 정했다

문학기행이라 하지만 사실은 모두들 겨울이 다 가기 전 눈꽃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사진 길이어서 기상상태가 좋지 않으면 주의할 것이 많아 행사를 담당했던 분들이 돌발사고와 회원들의 안전을 위하여 현지답사를 3번이나 다녀왔다. 눈이 내리면 숙소인 위스퍼링 파인스 캐빈(Whispering Pines Cabin)까지 올라가는 길은 스노우 체인을 달아야한다고 했다. 두꺼운 옷은 물론 근처의 짧은 하이킹을 원한다면 안전한 신발과 트레킹 폴, 모자 등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출발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우리 일행이 출발한 오후 2시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LA에서 동쪽 방향으로 60마일쯤 가다가 유니버시티 스트릿(University st.)을 만날 때까지 오락가락하며 비를 뿌렸다. 대학을 관통하여 러거니아 애비뉴(E. Lugonia Ave.)끝에서 시작된 산길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스노 체인이 장착되지 않은 차는 올라갈 수 없도록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체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리 일행은 밀크릭 로드 스테이션(Mill Creek Rd.)에 차를 주차시키고 숙소로 정한 위스퍼링 피니스 캐빈에 전화를 하고 기다리니 매니저가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평지에는 봄빛이 완연한데 산으로 올라갈수록 조금 전의 세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천지가 온통 하얗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서 10마일쯤 올라오니 작은 캐빈들이 동화 속의 마을처럼 흰 눈 속에 잠겨 있다

벌써 도착한 30여명의 회원들은 조 별로 방을 배정 받아 각자 준비해 온 저녁을 차리느라고 분주했다. 캐빈 안은 생각보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히터와 벽난로의 은은한 불빛이 실내를 아늑하게 했다. 요리솜씨로 정평이 난 정해정 회장님표 해물탕을 차려 놓고 창문 밖 야트막하게 달려 있는 가로등 아래 하얀 눈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눈 오는 날을 좋아했던 시인 백석의 시세계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식사가 끝난 회원들은 하나 둘 컨퍼런스 룸으로 모였다. 각 조별로 맡은 과제들을 발표하고 토론을 하면서 백석 시의 매력에 깊이 젖어 들었다. 그 시대의 멋쟁이 모던 보이였던 백석. 연둣빛 더블 양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광화문을 걸을 때면 마치 프랑스의 몽마르니스로 느끼게 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는 그,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철저하게 향토적이다. 농촌의 흙냄새와 풍토를 평안도(정주) 농민의 언어로 갈고 닦아 노래했다. 그 중에서도 먹을거리에 대한 시를 섬세하고 생생하게 미학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순서로 백석 시를 낭송하고 곧바로 뒤풀이로 들어갔다


창밖엔 일년 중 가장 크고 둥글다는 보름달이 하늘에서 온통 은빛을 풀어 놓은듯 서늘하면서 고즈넉하게 산간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싸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짜기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중략
-백석의 나타샤와 흰당나귀 중-

한 회원의 미니하프 연주로 분위기는 무르익고 문우들의 우정과 밤은 깊어 가는데 밖에는 흰눈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더 소복이 쌓였다 짧은 하이킹을 위하여 회원들은 산쪽으로 향하고 몇몇 사람들은 숲을 따라 눈위를 천천히 걸었다 쭉쭉 뻗은 오크 숲 사이에 흰색 별장과 통나무집들이 스위스의 어느 산속 마을을 연상케 했다 어디서 나왔는지 눈위에서 오뚝하니 두 발을 들고 선 다람쥐가 낯선 방문객을 구경하고 있었다. 차가운 듯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숙소에 돌아와 하산 할 준비를 했다.

가족과 함께 혹은 가까운 친구들, 연인들이 주말을 이용해 이 겨울의 마지막 눈 구경을 하며 겨울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글마루 박신아 회원>


캐빈 인근에 있는 눈 길을 걷고 있는 글마루 회원들.


시인 백석의 시 세계와 삶을 조명해 보기 위해 빅베어 지역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글마루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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