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본융 <본 경희 한의원 >
“그렇게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들으니 기(氣, 기운 기)가 막힌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더니, 간담(肝膽, 간장 간, 쓸개 담)이 서늘하다”
“너처럼 겁이 없는 대담(大膽, 클 대, 쓸개 담)한 놈은 처음이다.”
“어젯밤에 잘못 잤더니 등에 담(痰, 담 = 병리적으로 변한 탁하고 끈적거리는 체액)이 결렸다.”
“밥을 급하게 먹다가 체(滯, 막힐 체)했다.”
위의 상용구들처럼 보통 흔히 쓰는 말들이지만 그 정확한 뜻이나 원류에 대해 아는 이들은 의외로 찾기 힘들다. 이 말들은 그 원류가 한의학 전문용어에서 출발하였으나 오랜기간 동안 언중 속으로 점차 스며들어 일반인들도 쉽게 쓰는 단어가 된 경우들이다. 이 중에서 오늘의 주제는 밥을 먹다가 ‘체’했을 때 쉽게 할 수 있는 대처법들이다. 영어로 소화불량(indigestion)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속이 체했다라는 말은 영어로 대체할 만한 마땅한 말이 없다. 그저 ‘indigestion(소화불량)’, 혹은 ‘stomach bloating(위장의 그득함)’ 등과 같은 애매모호한 단어들뿐이다.
분명 한국인들에게는 소화불량과 식체의 증상은 명확히 다름에도 한의학적 바탕이 없는 영어의 특성상 이를 감별하여 쓸 만한 표현을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또 이 식체의 증상을 치료할 만한 마땅한 수단도 없는 것이 양의학의 특징이다. ‘체(滯, 막힐 체)했다는 증상은 단순히 보자면 체내에서 기의 순환이 돌발적인 연유에 의하여 별안간 막혔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막혀서 제대로 순환 되지 못하는 기를 어떻게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까? 한의사들은 전신의 기 순환을 강하게 시켜주는 사관혈(양쪽 합곡, 태충혈)에 강한 자침하여 이러한 체기를 치료한다. 이는 마치 지나치게 큰 용변을 보아 순간 막혀버
린 수세식 변기를 뚫어뻥(plunger, 흡인식 하수구 청소기)으로 뚫어주는 연상을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물론 심한 체기의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침치료를 통해야 완치가 가능하겠으나, 가벼운 식체 증상일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 일반인들도 쉽게 침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선, 손가락 말단부를 딴다. 이 방법은 수지 말단의 신경과 말초혈관을 자극하여 기와 혈의 순환을 순간 강하게 이끌어내어 막혀있는 기의 흐름을 뚫어주는 효과를 지닌 방법이다. 침치료 만큼의 효과는 없으나 응급처치법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다. 손가락 말단을 따는 비방에 대해서는 지역마다 가문마다 내려오는 정통의 비전들이 있으나 감히 이쪽의 전문가로서 말하자면 구체적인 위치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조언을 하겠다. 열 손가락 끝을 모두 따는 것도 괜찮긴 하나 이는 평소 독자를 섭섭케 했던 분들께만 적용 하시길 바란다. 일반적으로는 소상혈(엄지 손톱의 외측 하각에서 아래바깥쪽으로 1mm 대각선 방향), 상양혈(검지 손톱의 엄지측 하각에서 아래바깥쪽으로 1mm 대각선 방향)과 소택혈(새끼손가락 손톱의 외측하각에서 아래바깥쪽으로 1mm 방향) 세 곳을 1회용 란셋으로 찔러 피를 뽑아주면 충분히 효과적이다.
이와 더불어, 따뜻한 생강꿀차를 같이 마셔주면 더욱 좋다. 생강(fresh ginger)은 위장에 따뜻한 기운을 북돋아주고, 소화에 도움이 되며 꿀의 달달한 맛은 위장기능을 보강해 준다. 이들을 따뜻하게 차로 마시면 혹 긴장이 되어 딴딴해진 위장벽을 부드럽게 풀어주므로 손가락을 따는 처치와 더불어 해준다면 가벼운 식체 증상은 대부분 금방 없어질 것이다. 가게에서 미리 만들어진 생강꿀차도 좋지만, 생강이 신선할수록 더욱 효과적이므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것을 추천한다. 만드는 방법은 신선한 생강을 얇게 편으로 썰어 5-6 조각을 물 두 컵 정도 분량에 넣고 20분간 끓인다. 물이 졸여 한 컵 분량 정도 되면 이를 잔에 붓고 여기에 꿀을 1 큰술 정도 넣어 타서 마실 정도의 온도로 식혀 마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