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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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현장에서/ 과거의 아픔보다 미래 중시해야(상)

2010-03-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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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한동안 스포츠계 한편에서는 타이거우즈의 사생활을 두고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도 내용은 잘 모른다. 그러나 진정 타이거우즈는 응어리를 짊어진 채로 골프백을 던져야 하는가? 골프 황제로 추앙하며 떠받들 때와는 판이하게 모두들 매정하게 질타를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일어난 만큼만 이야기 되진 않는다. 언론은 사실 그대로만 보도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와중에 한 골프천재가 만신창이가 되어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골프의 미래와 골프의 신화가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골퍼의 한사람으로서, 우즈의 모습을 필드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퍼 담을 수 없고 지나간 버스는 다시 붙잡을 순 없지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사람에게 갱생(?)의 여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순간의 실수를 비난만 한다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라는 속담이 괜한 얘기는 아닐 듯하다. 성경에는 잘 알려진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율법대로라면, 돌팔매질을 당하여야 하였다. 그 자리의 모든 군중들이 그 여인에게 비난을 외칠 때, 예수는 군중을 향해 “죄 없는 자 저 여자를 쳐라”고 했다. 지금 타이거우즈는 골프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아니 일어서야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타이거
우드를 무대 뒤로 퇴장시키기에는 너무 젊다. 자라서 골퍼가 되겠다는 새싹들에겐 우즈는 그들의 미래였다. 그들의 가슴은 골프와 타이거우즈라는 단어만으로 두근거림이 있었다. 열심히 해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 본인에게도, 그를 멘토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것이다.


예전의 샷을 구사할지, 골퍼로서의 신화를 계속 이어나갈지에 대한 일은 전적으로 우즈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든 만큼 무엇인가. 다시 보여주며 희망도 주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중적인 행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석과 사석에서의 모습이 다른 공인이 어디 한둘인가?
세계 각지의 지도자들이 부정축제로 질책 받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예는 흔하다. 한국의 경우 많은 전직 대통령, 의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법정에 서거나 조사를 받았다. 그들 모두가 똑같이 처리된 것은 아니다. 법 앞에 용서받은 자도 있고 준엄한 심판을 받은 자도 있다.

잘 한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 중에는 다시는 봉사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세계 모두가 국가 경쟁력을 운운하며 뭉치고 나아갈 때 역으로 우리만 뒷걸음질 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과거의 청산이 의미를 가지는 순간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메시지가 있을 때이다. 우리와 상관없는 흑인 골퍼의 이야기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감한 얘기라는 걸 알지만, 유승준에 관한 짤막한 소감도 추가하고 싶다. 미국,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지만 아직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는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다. 왜 그럴까? 당시 그는 우리와 같이 미국에 살아가고 있는 한동안 TV 스크린을 풍미했다.

한때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나름의 꿈과 희망을 주었던 한국인 가수 유승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부분은 병역문제와 관련한 일련의 행태였다. 그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준, 그를 신뢰한 이들에게 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이루어진 법제도 측면의 순기능, 요즘 연예인들의 병역의무 기피현상 탈피 등 긍정적 측면이 사실 더 많이 축적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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