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 이 고비만 넘기세요

2010-0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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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욱이 이야기

“승욱엄마, 도저히 미국에서 못살겠어요. 다시 한국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2년반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이 어려움 때문에 전화가 왔다. 장애자녀 때문에 한국에 잘 나가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미국을 왔는데 신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남편 직장도 항상 불안하고, 언어적인 어려움, 결정적으로 장애자녀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으니 엄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듯했다. 힘들어하는 사연만 열심히 들어주었다. 방법을 알면 나에게 왜 전화를 했겠는가. 그런데 나 역시도 도와 드릴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나도 미국에 와서 영주권을 받기까지 5년이란 기간에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무진장 짐을 쌌다 풀렀다를 반복했다. 3단짜리 검은색 이민가방을 누구보다 잘 쌀 수 있을 정도로 짐싸기의 달인이 나다. 영어가 안 되니 뭐든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승욱이 때문에 직장을 다닐 수도 없었고, 신분이 안 되니 운전 중에 경찰차가 내 뒤에 바짝 따라와도 심장이 떨렸고, 승욱이의 장애는 더 더욱 심해졌었고, 생각을 하니 미국은 나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낮에는 그나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지만, 남들이 다 자는 늦은 밤에는 승욱이가 잠도 자지 않고 난리를 쳐대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답도 없는 문제들이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짐을 싸고 있었고 날이 밝으면 아이들과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할 때 친정아버지는 “이 고비만 넘겨라.


영주권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 그 다음은 한국을 가든지 미국에 있든지 알아서 결정해라.” 5년간 아버지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이 고비만 넘겨라…’였다. 나도 나지만 아버진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이 드신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5년이란 시간동안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이었다. 물론 5년을 기다려 영주권도 받았고, 승욱이가 와우이식 수술도 하게 되었고, ESL 과정도 열심히 해서 영어도 어느 정도(?) 극복을 하게 되었다. 끈기 없고, 참을성 없는 나를 붙잡아준 말이 ‘고비만 넘겨라’였다.

아침이 되면 전화를 걸어야겠다. “OO어머님, 이 고비만 넘기세요. 오늘 일을 옛날이야기 하듯 하실 때가 반드시 올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꾸 옮기다보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뭔가 되었을 때 결정을 하세요”라고 힘주어 말해 줘야겠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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