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피트 넘는 산들 주변 46여개 피크 병풍처럼 둘러싸여
평균 8인치 이상 눈 쌓여 있으면 반드시 스노슈즈 신어야
1월초 순 평소 친분이 있는 뉴욕 일요산악회 정영은 회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드론댁 (Adirondacks)으로 겨울산행을 하자는 제의였다. 지난해 여름 알래스카 여행제의 때도 일정이 맞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었으나 이번에는 연휴가 낀 2박3일간의 짧은 여행이라는 말에 기꺼이 가기로 했다.
아드론댁 주립공원의 산군들은 뉴욕근교에서는 흔히 볼 수없는 4,000에서 5,000 피트가 넘는 산들로 주변에 46여개의 피크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니 가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무려 600만 에이커의 넓이로 경상 남,북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지역에 산들이 널려있는 셈이다. 이 안에는 6개의 대형 스키장과 10개 스노모빌장, 크로스컨추리코스, 산
악자전거코스, 승마코스 등이 있고 수백개가 넘는 호수에서 겨울에는 개썰매를 즐기고 여름에는 비치와 Fishing을 만끽한다. 이외에도 7개의 아이스 클라이밍(Ice Climbing)코스와 2개의 인도어 클라이밍 훈련장이 산꾼들을 부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미국 동부지역에 사는 우리 산쟁이들에게는 그저 메카와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드론덱 산행 일주일을 앞두고 마음이 괜시리 바빠지며 부산했다. 지난 2년 동안 개인사정으로 겨울산행은 물론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근교 산행 외에는 등반다운 등반을 제대로 못해봤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 산에서는 장비가 한 가지 라도 없으면 등반을 망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집 차고와 창고 속에 잠자고 있거나 어느 구석 어딘가에 박혀 있을지 모를 겨울등산용품을 찾거나 정리를 해서 배낭을 꾸려놔야만 했다. 드디어 1월16일 아드론덱 출발일이 다가왔다. 새벽 6시반에 뉴저지 킹사우나 뒤편 공터에 버스가 도착하자 서둘러 자리를 잡고 6시간의 긴 여행길에 올랐다.
겨울산행은 특히 방한복 등 옷가지가 더욱 많기 때문에 대원들 보따리는 부피가 큰 배낭 외에 짐 한 개씩이 더 추가된 대다 3일간 먹을 물과 식량에 부식까지 실렸으니 11명이 타고난 버스 뒤가 짐으로 넘쳐 15인승 버스가 그야말로 터질 지경이었다. 버스는 87번 길을 따라 업스테이트 뉴욕을 향해 잘도 달려 이날 낮 12시30분 드디어 목적지인 레이크 플레시드의 통나무 산장에 도착했다. 첫날은 몸을 풀 겸 세라닉 레이크 인근 스키장에 도착, 튜브로 된 눈 썰매를 한 시간쯤 즐긴 후 돌아와 김치두부찌게와 와인을 곁들여 부라보를 외치며 즐거운 저녁을 들고 내일 새벽에 떠날 산행을 위해 일찌감치 침낭 속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일행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새벽 7시에 짐을 꾸려 차에 올라 오늘의 등산지인 마운틴 케스케이트 등산로 입구까지 30분 만에 도착했다. 겨울철 아드론덱 등산시즌에는 등산로에 평균 8인치이상 눈이 쌓여 있기 때문에 누구나 스노 슈즈를 신어야한다고 명문화 되어있다. 이날 등산로는 며칠째 신설이 오지 않은데다 앞서간 등산객들이 다져놔서인지 스노 슈즈를 벗어도 발이 빠지지 않아 대부분의 대원들은 등산 30분도 채 안 돼 스노 슈즈를 벗어 배낭에 지고 가야했다.
미국의 산길은 대부분 세 가지 코스로 나뉜다. 쉬운 코스는 흰색, 중간코스는 옐로나 블루, 경사가 심하고 힘든 코스는 레드로 나뉘어 길을 표시해 놓는다. 오늘 오르는 이산은 왕복 6마일정도 되는 레드코스로 그리 경사가 심한 편은 아니나 경사가 계속 이어져 눈 쌓인 겨울 산치고는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산행 한 시간여 쯤 지난 후 부터 웬일일인지 땀이 많이 나고 배가 붙은듯 허기가 지면서 기운이 떨어지고 배낭은 천근같이 어께를 눌러왔다. 추울까봐 방한 내복을 많이 껴입은 데다 너무 일찍 일어나 조반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인 듯 했다. 눈이 많을 땐 아이젠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날 산에 눈이 많을 줄 알고 아이젠을 산장에 두고 온 것도 걸음을 힘들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아름다움을 감상할 겨를 없이 정상에 오르고 보니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앞이 탁트인 쾌청한 날씨에 멀리 마시산(Mt Marcy)를 비롯해 와잇 훼이스마운틴(Mt. White Face)등 고산준령들이 눈을 머리에 하얗게 이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가까이 내려 보이는 능선에서는 자작나무위에 쌓인 눈들이 마치 진시왕릉을 지키는 토우를 연상시키듯 늘어서있는 모습 또한 장관 이었다. 정상에서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내려오니 대원들이 모여앉아 점심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라면 한 수저와 따끈한 눌은밥 끓인 물 한 컵과 말린 과일 몇 조각을 먹고 나니 어느덧 피로가 풀리고 몸 컨디션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 옛날의 체력으로 돌아오는 듯 했다. 하산 후 산장에 돌아온 대원들은 맥주로 피로를 풀며 담소를 나눴고 리빙룸에 붙어있는 벽난로에 정 여사가 직접 굽는 갈비찜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등반여행의 마지막 날인 18일은 모두가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고 박물관과 동계 올림픽 관련 시설을 둘러보기로 했다. 1932년의 동계올림픽과 1980년의 동계올림픽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있었지만 열악한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옛날 선수들의 모습에서 더욱 아름다운 진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키점프대 관람을 끝으로 시내에 들어섰을 때 정영근 대원이 피자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해 맛있게 잘 한다는 오리지널 이태리 피자집에 들렀다. 대낮인지라 손님이 다행이 없어 우리일행 모두는 피자집을 독채로 얻은 셈이 됐다. 대원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밀러 레익의 설경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흑맥주와 생맥주를 섞어가며 세가지 종류의 피자와 함께 브라보를 연발하며 무사등반을 자축했다.
<장동건 필라한인산악회장>
뉴욕일요산악회 정영은 회장(왼쪽 세번째)과 장동건 필라한인산악회장(오른쪽 두번째)를 비롯한 회원들이 단단히 월동준비를 했다.
산행 중 잠시 중턱에서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사진제공=장동건, 정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