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혈통 위한 ‘우객혼’ 등 남녀관계에 비교적 관대
간통죄 매우 엄한 중국에 비해 몽골은 경미한 재산형
누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낙엽도 다 져버려 황량하고 스산한 겨울의 허드슨강가에 서서 건너 마을 브롱스를 바라보며 옛 추억을 더듬는다. 한 20여 년 전 한국에서 <가시나무 새>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잘 생긴 미남 신부가 서품을 받고 어느 교구에 부임해 왔는데 역시 아름답게 생긴 교구의 처녀와 그만 사랑에 빠진다. 어찌하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이 순진한(?) 신부는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주교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나는 그 때 그 주교 신부가 그 젊은 신부를 어떻게 처리할 지 신경을 곤두세워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교신부는 후배신부의 고백을 들은 후 빙긋이 웃으며 오히려 격려해 주는 것이 아닌가?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메세지는 이렇다. “너는 이제 죄인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죄인의 심정에서 겸손하게 사목하라.”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는 청교도 목사인 딤즈데일의 죄책감과 그와 간음한 여인 헤스터의 순수한 마음을 대비시켜서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간음혐의를 받은 피고 헤스터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판사들은 헤스터와 간음한 남성이 누구인지를 묻지만, 그녀는 끝까지 함구한다. 간음(Adultery)의 낙인이 찍힌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서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부터 헤스터와 딤즈데일 목사가 대비된다. 딤즈데일은 겉으로는 거룩한 개신교 목사로 행세하지만, 속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사람들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보스턴 시민이 헤스터에게 간음의 약자인 A자를 달아 주려고 했던 것과 같은 의도에서 딤즈데일의 가슴에도 A자를 달아주려 했다. 그런데 헤스터가 항상 가슴에다 달아야 했던 ‘주홍글씨’는 그녀가 불완전한 죄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한편, 그녀가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녀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했기 때문에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치과 선교사를 하다가 몽골로 온 아무개 선교사 왈, “우크라이나의 여인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이상 선교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몽골로 왔는데 몽골의 여인들은 더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완벽하게 잘 빠진 몸을 가진 인종은 흔치 않습니다. 아마 기마민족의 후예가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그의 의사다운 분석과 결론에 거기 모인 남정네들은 그저 고개만 끄떡일 뿐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그의 이야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몽골의 여인들은 아름답다. 징기스칸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각국의 미녀들을 얼마나 많이 데려왔을까? 고려의 미인들은 또 얼마나 고초를 겪다가 왔는가? 그 인종들이 믹스가 되어져서 그런지 몽골의 여인들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동토의 땅에서 사는 몽골의 남정네들을 위한 조물주의 특별한 배려라고 해야 할 정도 그녀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모 신학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청량리 역전의 사창가를 감히(?) 복음화 시키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쳐 들어간 아무개는 그 후 전도 사업은 고사하고 그 골목의 동기(기둥서방)가 되었다고 하는 미확인 전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몽골의 여인들은 뇌쇄(惱殺)적이고 이국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몽골사람들은 사랑에 무척 관대한 것 같다. 몽골은 중국의 법과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예로 몽골 야사 단편 제 1조는 간통에 대해서 사형을 주문한다. 그런데 간통에 관한 이런 엄격한 태도는 몽골의 법과 관습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몽골의 여러 종족들 간에는 혼인을 전후한 시기에 남녀관계가 매우 자유로웠음을 이 방면의 연구가들이 공통적으로 밝혀냈기 때문이다.
또한 우객혼(遇客婚)이라고 해서 일종의 난교(亂交)의 흔적도 발견이 되는데 우객혼이란 옛날의 에스키모인들과 마찬가지로 손님이 방문을 하면 아내로
하여금 동침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나 유교적인 잣대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몽골의 자연 환경은 그럴 수도 있게 만든 것이다. 또 솔직히 말하자면 신라시대나 고려 초만 해도 우리조상들은 상당히 자유분방했고 어떤 연구에 의하면 우객혼의 습속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고 하지 않은가. 몽골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유목민의 처지로 볼 때 남녀교제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만남자체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근친혼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후손을 보게 된다는 병폐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 방문하는 객을 통해서라도 우수한 혈통을 보아야 하겠기에 이런 우객혼의 문화가 형성 된 것이다. 몽골인은 일단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집에서 낳은 자식은 다 자기의 자식으로 인정한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
지 말라는 한겨레의 좁디좁은 속알 머리는 몽골인들에게서 좀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우객혼에도 법칙이 있는데 아무 외간 남자를 들이는 것이 아니다. 문자를 알고 인물이 번듯한 남정네에 한하는 것이다. 그것도 가문의 어른들의 회의를 거쳐서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깊은 과정이 있는 것도 모르고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막연한 분홍빛 기대를 가지고 은근히 물어보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몽골의 관습법은 간통에 대하여 아주 관대하여 경미한 재산형에 처하거나 아예 없던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예를 들면 옛날 차진 비치크 법에 의하면 간통은 말 한 마리의 재산형을 부과하는데 승려의 첩과의 간통은 아예 처벌도 없는데 이는 독신을 서약한 승려가 그 서약을 파기한데 따르는 정신적인 형벌을 주는 것으로 간주 한다는 것이다. 1640년 몽골 오이라트 법전에 따르면 간통죄에는 겨우 가축 4~5마리이며 그나마 처녀의 간통은 아예 처벌 규정조차도 없는 것이다.
외몽골의 관습법에는 간통은 현행범만 처벌하며 그나마 여자는 눈감아주고 남자만 겨우 말 한 마리의 재산형에 처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간통에 대하여 매우 엄한 편인데 이는 가족관계의 순수성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다. 옛날 간통죄는 중국의 기본적 형벌에 속하는 궁형(宮刑,생식기를 뿌리째 뽑
아내는 것)으로 다스렸던 것이다. 청나라 법은 간통에 대해서 약간 완화되었는데도 곤장 100대로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장(丈) 백이면 거의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잔인한(?) 중국인들이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몽골에서 1789년 이번 원칙례라는 법에서 발견 하였는데 남편은 간통 현장에서 간부(姦婦)와 간부(姦夫)를 살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간통을 엄하게 다스린 것이다. 평민간의 간통은 간부(姦夫)가 남편에게 재산형의 벌금을 내고 간부(姦婦)는 남편에게 인도 되는데 이는 살해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왕공의 비와 평민이 간통하면 평민은 몸을 여덟으로 찢어서 나누고 그 가족은 노예가 되며 비는 참수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성문법은 이렇듯 엄하게 다루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안장이 달린 말 한 필로 대신 했다고 했으니 참 관대한(?) 몽골인 들이다.
율법이 앞서야 하는가? 사랑이 앞서야 하는가? 본능에 충실해야 하는가? 규범에 충실해야 하는가? 성인(聖人)으로 살아 갈 것인가? 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내가 군대 생활을 막 시작할 때 제대를 앞둔 하늘같은 고참병들이 있었다. 그 중에 경상도 산골 촌놈이 하나 있었는데 이자가 화가 났다하면 하는 욕이 “이 노무시끼들, Z 뿌리를 확 뽑아 버린다.”였다. 당시만 해도 순진했던 나는 그런 끔찍한 욕도 처음 들어 보았지만 정말로 그 무
지막지한 촌놈이 Z 뿌리를 뽑는 줄로 알았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이런 궁형이 없던 걸로 사료되지만 이따금 궁중에서 질투심 많은 왕비가 자신들의 연적(戀敵)인 예쁜 후궁에게 궁형을 내렸고 고종의 부인 명성황후도 남편의 애첩에게 그런 형벌을 내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확인 할 수는 없고...
얼마 전 한국에 사는 조선족 여인이 10살이나 연하인 조선족 남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남편에게 애인이 있음을 알고는 남편의 거시기를 절단했다고 하니 이것도 궁형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사적으로 행해지는 궁형은 이따금씩 해외 토픽으로 보도가 된다. 엊그제는 골프황제 우즈가 아내에게 골프채로 죽게 맞은 모양인데 아마도 바람을 핀 것 같다는 것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남정네들이여 궁형을 당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하시라. 자고로 남자는 열 여자 싫어하는 법이 없다하고 또 질투심에 눈이 먼 여인은 못할 것도 없는 맹렬장부가 되는 법이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했으니 이 땅의 남정네들이여, 부디 몸을 성히 보존하시라.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몽골 전통의상 패션쇼 무대에 선 몽골 미인들. 몽골의 전통의상은 델(Deel)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소매 넓은 두루마기처럼 생겼다. 델은 코트나 가운처럼 한 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부스’라고 불리는 허리띠로 묶어 옷의 길이와 폭을 조절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이 허리띠가 멋을 내는 장식과 같아서 비단천에 화려하게 수를 놓기도 한다.몽골의 전통의상은 델에 ‘말가이’라 부르는 모자를 쓰고 ‘고탈’이라 불리는 신발을 신어야 제대로된 격식을 갖추는 것이다. 솜을 누벼 만든 모자, 비단천에 온갖 장신구를 늘어뜨린 모자, 여우 가죽 모자, 보석과 장신구로 가장 화려하게 멋을 낸 의식용 모자 등이 아름답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