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 산내음 맡으려 박현종 회장 ‘산우회’ 조직
알음알이로 50-70대까지 회원 50여명 이르러
여름철 산에 오른 잭슨하이츠 산우회 회원들. 오른쪽은 박현종 회장
뉴욕에는 ‘만만한’ 산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꼭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찾지 않더라도 한국에서는 서울 근교에 가끔 들릴만한 산이 있었다는 얘기다. 주말에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북한산, 도봉산, 청계산 등을 가볍게 오르고, 내려오는 길엔 파전이나 닭백숙에 막걸리 한잔 걸쳤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뉴욕이라고 꼭 3시간씩 운전을 해야만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중장비에 가까운 용품들을 갖춰야만 산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말 오전 한때, 혹은 시간이 허락한다면 평일 오전에 ‘가볍게’ 등상을 하며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푸는 소규모 등산 클럽이 뉴욕, 뉴저지 지역에는 상당히 많다. 50명 회원규모의 잭슨하이츠 산우회가 그중 하나이다.
“아니, 뉴욕에도 산이 있어요?”
잭슨하이츠 산우회 박현종 회장이 등산을 가자고 권유한 지인에게 한 말이었다. 박 회장이 처음 베어마운틴을 오른 것은 2003년 봄. 그때까지 20년 넘게 수산업에 종사했던 박 회장은 등산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생업 자체가 평일의 여가 활동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지만, 휴일이라고 해도 “뉴욕에는 몇 시간씩 꼬박 운전해서 먼 곳을 가야한 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쉬는 날 하루를 그렇게 무리하며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찾아간 산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직 막히지 않을 시간인 주말 이른 오전의 베어마운틴은 불과 자신이 거주하는 우드사이드에서 30분 남짓 거리. 한 시간 가량의 산행도 기분 좋게 가쁜 숨을 쉴 정도였다. 무엇보다 ‘산이 내뿜는 향기’가 그렇게 달콤하고 향긋할 수가 없었다. “등산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산의 향기를 잊지 못해서 산을 찾습니다. 봄이면 봄, 겨울이면 겨울 특유의 상쾌한 냄새가 있지요.”산의 향기를 4계절 지속적으로 맡기 위해 박 회장은 15인승 밴을 구입하고 ‘잭슨하이츠 산우회’를 정식으로 만들었다. 마침 자신의 생업도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수산업에서 오후에 문을
여는 요식업으로 전환한 상태라서 부담이 없었다.
출발 시간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8시, 클럽 이름처럼 잭슨하이츠 종합식품점 앞에서 출발한다. 원래 출발 시간은 7시였지만 최근 1시간을 늦췄다. 아무리 등산이지만 나오기 전 조금 화장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여성 회원들의 요청에 의해서다. 처음에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 10명 정도로 운영되다가, 회원들이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며 어느덧 50명에 이르렀다. 매주 나오는 열성 회원도 있고, 한두달에 한번 정도 나오는 회원도 있어 보통 한 번 산행에 20명을 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어떤 회원들은 아예 산행지 입구에서 조우하기도 한다.
행선지는 늘 베어마운틴이다. 박 회장에 따르면 팰리세이즈 파크웨이 출입구 14번과 19번 사이에는 어디에 내려도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은 팰팍 15번입니다”라는 식으로 산을 정한다. 트래픽이 없기 때문에 늘 등산은 오전 9시 이전에 시작된다. 정상에는 보통 10시에서 10시 30분 도착. 계절에 따른 경치를 충분히 즐긴 뒤 방갈로에서 준비해 온 음료수나 먹거리를 나눠
먹으며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등산을 시작한 이후 “ 체력도 좋아지고, 신경통도 없어지고, 겨울에 감기에 안 걸리게 되었다”는 박 회장은 “등산 자체가 주는 혜택이 몸으로 간다면, 방갈로에서의 담소는 정서적인 안정을 준다”고 말한다.
“회원들의 연령이 보통 50대에서 70대까지입니다. 저도 50대지만 70대 회원들의 긍정적인 삶의 얘기를 듣다보면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지요.”
서예가 이유성씨가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가하는 대표적인 70대 멤버다. 역시 이 단체 회원인 뉴욕라이프 파트너 강성수씨도 50이 된 후에야 등산을 시작한 경우다. 처음엔 혼자 시작했다가 혼자 즐기기엔 너무 아쉬워 부인을 끌어들여 함께 산행을 즐기고 있다. 강성수씨는 “무엇보다 시간적인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강조한다. 조금 늦게 일어나 빈둥거리다보면 금방 점심때가 되어 버리는 것이 주말이다. 오전 일찍 출발해, 오후 1~2시 이전에 귀가하고 다시 오후의 약속이나 일과를 시작할 수 있으니 참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강씨는 반나절의 산행으로 다시 한주를 너끈히 보낼 수 있는 활력을 얻는다.
불과 몇년전 뉴욕에도 산이 있냐고 물었을 만큼 산에 대해 몰랐었다가 이제는 산이 없으면 못사는 처지가 되었기에 박 회장은 “부담 없고 편하게 등산을 시작하라, 연령에 상관없이 시작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여름에는 물과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면 족하고 겨울에도 두꺼운 옷과 등산화면 충분하다. (사진 속의 박 회장은 심지어 청바지도 아닌 ‘기지 바지’ 차림이다) 그 대신 잭슨하이츠 산우회는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절대 산행을 하지 않는다. 미끄러워진 바위에 나이 드신 회원들이 낙상할 위험이 있기 때문. 그래서 6년째 지속된 등산에서도 부상자가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겨울에는 회원 참가가 저조하지 않냐고 묻자 박 회장은 겨울산이 특히 좋다고 말했다. 산길도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고 대부분 푹신하며, 경치도 뛰어나다는 것. 특히 겨울 방갈로의 분위기는 참 운치가 있단다. <박원영 기자>
회원들이 매번 찾는 뉴저지 베어마운틴은 초보자가 오르기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