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17)한자(漢字)의 원조인 갑골문은 동이족(東夷族)의 문자

2009-11-06 (금)
크게 작게

▶ 신재영 목사의 몽골 체험기

▶ 한문 원조는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 갑골문

내가 어느 정도 문리(文理)를 터득(?) 했다고 약간 발칙한 생각을 했을 때 문자를 만든 분들에게 감사했다. 특히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창제한 지나인들에게 어떤 경외(敬畏)를 갖기도 했었다. 나는 천학비재(淺學非才)한 장로교회 목사이지만 이 한자는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는데 매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자는 신이 내려주신 글자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창세기의 처음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특별한 한자들을 보면 한자를 고안한 사람들은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노아가 탔던 배의 한자 배 (선船)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배의 주(舟),여덟 팔 (八) 그리고 사람을 의미하는 입 (구口)인데 이는 노아와 그의 부인 그리고 세 아들과 세 자부를 합쳐 8명이 홍수를 피하여 탄 것이 배라는 의미가 확실해 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 십, 수 백 가지의 한 자를 풀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또 예를 들면, 나의 성(姓)은 매운 라면 신라면의 신(辛)이다. 이 신자를 분해하면 일어서다의 입(立) 자와 열 십(十)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 뜻은 맵다, 쓰다, 시다, 고통스럽다, 고생스럽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신자가 들어가서 만들어진 단어 쳐놓고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은 거의 없다. 신승(辛勝) 신산(辛酸) 신고(辛苦)등등...

그런데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이 신(辛)은 십자가 위에 일어 서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인생들이 어깨에 매거나 등으로 지고 갈 것이지 그 십자가 위에서 십자가를 밟고 일어서면 안되는 것이다. 그 안되는 일을 하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또 예를 들면, 내 고향은 경기도 여주의 대신면(大神面)인데 이 대신은 큰 귀신이라는 말이다. 영어로 하면 소문자 god의 잡귀신이 아니고 대문자 God으로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섭리하시는 조물주 하나님이다. 그 대신면 후포리에 미션 스쿨인 대신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이(里) 단위 마을에 중고등학교가 있는 것도 대한민국 실정으로
볼 때 대단히 희귀한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촌 동네 중고등학교에서 수 십 년 동안에 목사가 거의 백여명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보통 일인가? 여기서는 보통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동네 <대신면>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목사들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마을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이 풍족하신 하나님의 마을인지라 옛날부터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한국 최고 품질의 여주 쌀을 위시하여 밤보다 더 달고 맛있는 밤고구마, 기름지고 고소한 땅콩 등 물산이 풍족하여 언제나 먹거리가 넉넉하며 홍수나 가뭄도 거의 없는 아주 태평스런 동네인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도 점잖고 후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한문은 지나(중국)인이 만든 지나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고 그 원조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라고 했다. 갑골문(甲骨文)은 속칭 한자(漢字)라 불리우는 동방문자의 가장 이른 시기의 형태로 알려진 문자이다. 갑골문이란 명칭은 그 문자가 주로 거북껍질(龜甲)이나 소의 어깨뼈 등에 칼로 새긴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1899년 중국 하남성 은허(殷墟)에서 처음 발견됐다. 갑골문은 은왕조(B.C. 3400∼3100)때 도성의 유적지인 은허에서 출토되어 은허문자라고도 한다.

그러면 그 은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냐 하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하여 중국의 역사서들은 주나라 때부터 비로소 중국 고대사의 연대를 기록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나라 이전 시대는 자기네 나라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주나라 이전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바로 은나라 인 것이다. 그러니까 은나라는 비록 지나 땅에서 존재했지만 지나의 나라가 아니고 동이족의 나라라는 말이다. 그 사기(史記)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한족(漢族) 국가라고 분명히 기록했다. 바로 이 은왕조(銀王朝)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은나라 시대에 한자의 원조로 알려진 갑골문자가 발굴된 것이다. 이들의 발굴로 중원 땅의 역사가 뒤집혀 진 것이다. 그 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그에 대한 기록과 물증이 없어서 전설 속의 왕조로만 알려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은나라의 건국시조와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지나인들의 주장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문을 창제한 분이 바로 우리 동이족의 선대 조 할아버지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으로 한문(漢文)이 아니라 한문(韓文)이 맞는 것이다. 이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따라서 거기서 나온 한자(漢字) 또한 동이족의 문자인 것이다.

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지나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백과사전은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다.환단고기에 따르면 자부선인(紫府仙人)은 배달국 치우환웅 시대의 대학자다. 중국 전설상 한자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은 창(蒼)힐이라고도 쓰며, 황(皇)힐 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4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북두칠성의 方形을 이룬 네 별)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널리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한의 환제(桓帝) 때인 162년(延熹 5)에 세운 창힐묘비가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에 있다. 묘비문은 예서(隸書) 24행으로 되어 있으나 이미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순자(筍子)는 〈해폐편 解蔽篇〉에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창힐만이 홀로 그 글을 전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 배달 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인 것이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인 셈이다. 그러면 조물주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동이족에게 특혜를 베풀어 주셨을까? 그것은 우리 민족이 받은 사명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혹자는 독일어가 가장 철학적인 말이고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고 말하지만 우리 조상이 만든 한문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드셨다. 다시 말해서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지나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의 녹도문 이래 동이족들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역사에는 한문을 언제 어디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일본 오사까에 가면 백제의 왕인박사가 천자문을 일본에게 언제 전래했다는 왕인박사 묘소와 그 공덕비가 있다.

애석하게도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이 힘이 없어지고, 진나라, 한나라 등 한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한문(桓文)은 한문(漢文)으로 바뀌어졌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나라와 문자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가장이 힘이 없으면 자식이 고생하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법이다. 국력이 쇠하여짐으로 선조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으니... 한글과 한자는 하늘이 내리신 글자라는 뜻인데 나중에 중국 한나라가 감히 나라 이름을 우리 고대 한국(韓國)을 베껴서 한(漢)이라 짓고 하늘이 내리신 자 라는 뜻의 한자를 마
치 중국 한나라에서 만든 것인양 한(한나라漢)자로 왜곡한 것이니 동북공정이니 서북공정이니 하면서 이웃 나라와 그 문화까지도 자기들의 것으로 삼켜버리는 지나인들의 뻔뻔스럽고 능청스러움은 이미 그들의 할아비 때부터 계속된 일이다. 김지형 박사는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란 책에서 서로 다른 어족에 속했다고 알려진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두 말이 한 뿌리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음성학적, 문화학적 근거를 들어 한자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글이라고 주장한 ‘한자는 우리글이다’ (양문)를 펴냈다. 유
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박씨는 한자가 우리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상고사를 재확인하고 민족사의 과제인 우리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사 연구에 남아있는 과제다. 그 뿌리를 알려면 우선 한문(韓文=漢文)을 알아서 민족의 전통을 확인해야 한다. 한국사는 목표가 뚜렷한 근원을 향해서 돌아가는 ‘민족사의 Renaissance 르네상스 (문예부흥)’가 일어나야 한다. 본래 이 르네상스의 어원은 ‘옛 정통(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되돌아갈 고향의 영광과 위대한 추억이 없는 민족 그리고 그 향수가 없는 민족에겐 르네상스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곳에서 퍼서
인용하였음)
HSPACE=5
산동성 환대에서 발견한 가림토 문자‘
HSPACE=5
경남 남해군 양해리의 금산 중턱바위에 녹도문인 남해각자가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