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눈길, 손길, 발길…

2009-11-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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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길이 없었다. 누군가 첫 걸음을 내딛고 한 발, 한 발 걷다보면 길이 난다. 시작은 쉽지 않다. 무성한 잡초를 뽑아내야 하고, 크고 작은 돌도 옮겨놔야 한다. 비가 오면 질퍽해질까봐 자갈을 섞어 만든 시멘트 반죽을 부어 바람에 말려 단단하게 한다. 꼭 포장도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꾸만 가다보면 단단한 길이 생긴다.

땅에만 길이 있는 건 아니다. 하늘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다. 금이 없다고 아무 데나 다닐 수는 없다. 정해진 항로로 다녀야 안전하다. 바다에도 뱃길이 있다. 선장은 나침반을 보며 선장이 키를 잡고 항해한다. 서로 약속한 길, 그 길엔 안전과 행복이 보장된다.

그런데 보이는 길보다 훨씬 더 소중한 길이 보이지 않는 인생길이다. 보이지 않는 재료로 만드는데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이들에게 보이는 신기한 길이다. 내 인생길의 주체는 자신이기에 어떤 것도 핑계할 수 없는 책임이 따른다. 내가 걸어간 흔적들도 어느새 길이 되어 버렸다. 나의 생각, 말, 행동, 믿음, 꿈들이 버무려져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발길이 많이 닿는 곳엔 익숙한 만남이 이어져 길이 되었고, 손길이 자주 스쳐간 곳엔 정겨운 사랑이 무르익어 길이 되었다. 내 눈이 자주 머문 곳에는 기도가 현실 되어 길이 열린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소망의 이음줄, 그곳엔 종종 거룩한 액체들이 거름되어 뿌려지곤 했었다.

그런데 아무데나 길을 내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로 재어주신 영역 안에 길을 내야 복이 된다. 내 마음대로 길을 내었다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벼랑 끝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엔 나쁜 길도 여기저기 많이 만들어진다. 길은 내는 사람에 따라서 좋은 길도 되고, 나쁜 길도 된다. 왜냐면 그것은 포장할 수 없는, 아주 정직한 결과로 길이 나기 때문이다. 악한 발길, 손길, 눈길이 머물면 나쁜 길이 생겨나고 그 길에 들어서면 몸과 영혼이 상처를 받는다. 서로 자기의 유익만 챙기며 혼자 바삐 가는 외로운 길이기 때문에 슬픈 길이다.


선한 발길, 손길, 눈길이 스쳐간 곳에도 좋은 길, 함께 사는 길이 열려진다. 힘겨워도 그 길에만 들어서면 함께 손잡고 가는 친구들이 부축하기에 금방 새힘을 얻는다. 힘겨운 이웃을 돕는 손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의 손해보다 남의 손해가 더 안타까운 이들이 함께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길엔 행복과 웃음이 있고 기쁨과 춤이 끊이지 않는다.

누구나 살아가며 각자의 길을 만든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자가 선택한 길을 만들고 동행자를 찾는다. 좋은 길도 내가 만들고, 나쁜 길도 내가 만든다. 길의 넓이와 모양을 정하는 것도 바로 자신이다.

보이는 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는 인생길인데 어찌 함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한계를 알고 겸손히 절대자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큰 소리 칠 수 없는 나의 연약함을 깊이 아는 것을 도리어 나의 힘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어떤 길을 만들고 있는가? 내가 만든 길에 다른 이들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사랑이 준비되어 있는가? 이렇게 자문하면 숙연한 마음이 들어, 소박한 기도를 올리게 된다. “내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게 하소서. 그리하여 매일매일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게 하소서.”

정 한 나 /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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