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녀’(The Maid)

2009-10-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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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½


23년을 한 집에서 일해 온 중년 하녀 이야기

23년간을 한 집에서 일해 온 중년 하녀의 근면과 고독 그리고 이 하녀와 그를 고용한 가족간의 관계 및 라틴 아메리카의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묘사한 소품 칠레 드라마다. 일종의 성격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로 하녀가 평생을 봉사한 ‘자기’가정의 영역을 남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물리적 행동마저 서슴지 않는 과정에서의 사이코 심리 스릴러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이 영화는 오로지 하녀 역의 카탈리나 사베드라의 찌무룩하고 말 없는 연기와 그의 존재 하나로 버티고 서다시피하는데 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하루 종일 집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자니 힘이 들 지경이다. 올 선댄스영화제서 사베드라가 주연상을 받았다.

나이 40이 된 라켈은 1남2녀를 둔 칠레의 중산층 부부 문도 발데스와 필라의 집 하녀. 라켈은 매우 근면하고 효율적인 하녀로 필라의 집과 가족을 자기 것처럼 생각하며 하루종일 닦고 씻고 빨래하고 또 밥을 짓는다. 그리고 아이들도 마치 자기 자식들처럼 사랑하고 돌본다.

그런데 라켈은 자기 나름대로 가사를 돌보고 집안에 질서를 유지하는데 규칙이 있어 누구라도 이를 어기면 심통을 부리는데 이로 인해 10대인 장녀 카밀라와 충돌을 빚는다. 거의 반사회적이요 자기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 라켈은 필라의 가정을 위해 일하는 것을 천직으로 아는데 감독은 그와 필라의 가족간의 관계 묘사에서 애증이 함께 섞인 분위기 조성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런데 라켈이 과로로 쓰러지면서 그를 자기 가족처럼 여기는 필라는 보조 하녀를 두기로 하는데 이 것이 라켈의 거센 발발을 산다. 이 집은 내 집이라는 영토 고수 의식에 사로잡힌 라켈 때문에 보조 하녀들이 겪는 시련이 코믹하면서도 섬뜩할 정도로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먼저 어린 페루 태생의 하녀가 들어오는데 입주한 지 얼마 안돼 라켈의 심술과 사보타지로 인해 울면서 퇴직한다. 이어 라켈보다 나이가 더 먹은 하녀가 들어와 잠깐 라켈과 심리전을 벌이나 이 사람 역시 견디지를 못하고 나가버린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여자가 조깅을 즐기는 낙천적인 루시(마리아나 로욜라가 호연). 루시는 라켈의 불친절과 사보타지를 좋은 마음으로 받아 들이면서 라켈의 고독한 가슴을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라켈은 루시 때문에 삶의 태도가 서서히 변화한다. 낙천적으로 끝이 나는 라스트 신이 우습고 흐뭇하다.

영화 전체가 거의 실내에서 진행되고 촬영도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어 작품의 폐쇄공간적인 성질을 잘 살리고 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훌륭한데 칭찬이 모자라는 것은 거의 역겨울 정도로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는 사베드라의 연기다. 성인용. 선셋5, 타운센터(엔시노), 에드워드 웨스트팍(어바인).

HSPACE=5
고릴라 가면을 든 라켈이 거울 속의 자기를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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