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생명보험

2009-09-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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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생명보험을 들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사망해서 10억원의 보험금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겐 10억원이란 돈이 천문학적인 숫자라 어렴풋한 감도 잡히지 않지만, 그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게 부럽다기보다는 한 사람이 이 땅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걸렸다. 운이 좋다거나, 많은 보상금이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그 담보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왠지 마음이 씁쓸하고 안타까움이 더해졌었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에게 요구되는 생활대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사람의 경우가 너무도 다행스러운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로 부러워할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다. 간혹 많은 보험을 여기저기 들어 놓고 갑자기 죽은 것을 가지고 죽음 후에도 시시비비가 법정에서 오랜 시간 가려지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혹 그것이 고의성을 띤 것이라 하더라도 내 생각은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해보험이 아니고 생명보험인 까닭이다.

원칙적으로 생명을 담보로 그런 시도는 있다고 보고 싶지도 않고,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한 사람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돈은 결코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소위 목숨 값(?)이라는 명목으로 인질극을 벌이기도 하고, 파렴치한 인신매매범들이 어린아이나 가족을 납치해 가서 사람과 돈을 바꾸려고 흥정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일을 바라볼 때면 답답한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사람의 목숨 값이 돈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인가? 유명한 사람은 좀 더 값이 올라가고, 무명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은 헐값에 함부로 값을 매겨도 되는 것일까?
보험이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때를 대비하기 위해 편안할 때 조금씩 마련하는 성격인 것은 사실이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은 어떤 보험을 들어놓아야 되는 것일까? 살아갈수록 인생은 만만치 않은 항해임을 인정하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건강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돈도, 성공의 잣대도 판이한 결과를 만듦을 깨닫게 된다.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살수록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도 계속 허기져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그 높은 목표를 이룬 듯한 성공의 시점에서도 별안간 스스로 생명을 끊는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보험은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묻기도 하고, 이웃과 벗들에게도 그 답을 찾고 싶어 함께 고민해 본다.

인생을 살리는 보험은 돈이 아니다. 누구도 생명을 담보로 거래할 수는 없다. 그 인생이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면서 남도 나처럼 존귀하게 여기는 일, 무엇보다 그 귀한 생명을 담보로 열심히 사랑하고, 이해하고, 참아주는 일. 그것이 인생을 살리는 참된 보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험이라는 말 자체가 미래를 향한 약속이듯, 현재 내게 있는 작은 것들을 조금씩 나누고 심을 수만 있다면 보이는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낼 최상의 보험금은 이미 보장된 것이다. 현세뿐 아니라 내세까지 이어질 참된 생명보험, 내가 아는 최고의 생명보험은 ‘예수보험’이다.


정한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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