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고아의 손

2009-09-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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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원호기구가 돕고 있는 북한의 고아원에 갔을 때입니다.

방에 누워있는 한 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고아원의 열악한 시설에 대하여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힘차게 울어대는 아기들도 있었지만 그 아기는 울지도 않고, 너무나 여위었고, 눈만 뜨고 있을 뿐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두 살 정도라고 보모가 말했지만 체구는 돌이 채 안 되어 보였습니다. 닭장 같은 이층 철제침대에 누워 있는 이 아기의 손이 펴진 채 침대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 손을 보는 순간, 저는 무언가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급한 마음에 제 주머니에 넣고 간 사탕 하나를 그 아기 손에 얹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편 손에 얹어준 사탕을 바라만 볼 뿐 그 사탕 포장 종이를 펴거나 사탕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이 없었습니다.

그 때 곁에 있던 보모가 “아직 사탕과자를 먹기는 힘들 거야요” 하면서 그 사탕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딱딱한 사탕을 누워 있는 아기 입에 넣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아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 주민 누군가를 돕는 일은 다른 나라의 빈민들을 돕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입국비자를 받아야 하고, 어디를 가든지 지도원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돕는 대상들을 직접 만나서 전달하는 일은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원품(우유와 밀가루)을 국경에서 전달하고 돌아올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많은 후원자들이 “정말 고아들을 직접 먹일 수 있느냐”고 물어 오고 있으며, 이런 분들의 기대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직접 고아원에 지원품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접 전달하겠다는 우리의 고집(?)이 당국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고, 또 그 지원을 지난 6년 동안 매월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우들께도 진정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지원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국제정치 문제로 입국이 전면 차단돼 우리 역시 북한에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또 중국의 곡물반출 금지로 지원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또 어찌된 셈인지 북한은 미국인이나 유럽의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수월한 배려를 하면서도, 같은 민족인 우리에게는 자존심을 세우고 여간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아기들을 입힐 헌옷을 수집해서 보내면 추운 겨울을 문제없이 따뜻하게 지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어 보았더니 세관에 있는 당국자는 “우리는 헌옷을 받지 않습네다”라고 잘랐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기들의 내복들을 사서 보냈는데 우리의 구매 능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몇 십만달러, 혹은 몇 백만달러의 지원에는 귀가 번쩍 뜨이겠지만 우리 같은 민간단체의 작은 지원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6년간 이어진 우리의 지속적인 지원을 합산한다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우리의 지원이 도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국자들의 관심보다는 고아들을 직접 먹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저래 우리의 지원활동은 고달프고 어려웠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북한 당국의 대외 태도가 한결 부드럽습니다. 무엇보다 고아들을 돕는 일이 한결 수월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때로는 뭐하러 북한엔 드나드느냐고 핀잔을 주는 친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탕을 손에 들고도 입으러 가져가지 못하는 수척한 아기들의 손이 거기 있는 한, 그리고 교우들의 진정어린 지원이 답지하는 한, 우리의 작은 지원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송순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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