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나라 찾기

2009-08-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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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에게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침마다 세수를 할 때, 허리를 굽혀 얼굴을 씻지 않고 뻣뻣하게 서서 씻었습니다. 그러니 세숫물이 저고리며 바지를 흠뻑 적시는 것은 물론, 사방으로 물이 튀었습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허리를 좀 굽히고 세수를 하면 옷이 젖지 않고, 물도 쏟아지지 않을 터인데 왜 그러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단재 선생은 버럭 화를 내면서 일본 놈들에게 허리를 굽히는 놈들이 많은데 나까지 허리를 굽히란 말이냐? 하고 나는 우리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허리를 굽히지 않을 작정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 올릴 수 없다며 1936년 중국 여순 감옥에서 옥사할 때까지 호적 없이 지내셨습니다. 그동안 해방이 되고, 그 분이 돌아가신지 73년이 지난 올해 3월, 국가유공자법이 개정되면서 서울가정법원은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62명에 대한 가족관계 등록부(호적) 작성을 허가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발급된 가족관계 등록부에는 가족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손들은 빠진 채 독립유공자 본인의 이름만 기재됐습니다. 2달 뒤 신채호 선생의 친손자는 사망한 아버지 신수범씨를 신채호 선생의 친아들로 인정해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제적등본과 고령신씨 세보 등 자료를 확인한 결과 고 신수범씨가 신채호 선생의 친아들이 맞다며 신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단재 선생의 가족들이 선생의 가족관계 등록부에 가까스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는데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가 1945년이니까 64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어쩌면 독립투사들이 바라던 것보다 더 많은 발전과 빠른 국력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난 지 불과 60여년 만에 일본의 국력을 위협하는 경쟁국가로 발돋움하였고, 세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정말 경제적 수준만큼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문화적 도덕적 독립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요? 이 말은 단순히 우리가 피지배국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독립국가로서 세계에 나설 만한 국민적인 수준을 올려 놓았느냐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단순히 자유롭다는 것만이 아니라 전과자라는 이름을 극복하고 의젓한 가정과 도덕적인 인물로 사회적인 지위를 이룩했을 때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돈을 좀 더 벌고 경제적으로 나아졌다고 해서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처럼, 지배국가에서 벗어난 국민들이 사회 전반에서 정직성을 회복하여야 세계 앞에 떳떳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저마다 떳떳해지는데 조금씩 주저되는 상태에 있습니다. 북한의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한국도 관료들의 도덕성, 정치인들의 도덕성, 경제인들의 도덕성, 일반 국민들의 도덕성이 아직은 그다지 떳떳해 보이지를 않습니다. 해외에 나와 사는 우리 국민들도 이 점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아 보입니다.

역사학자였던 단재 선생이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고 고집했던 것은 단순히 일제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는 사학자로서 자기를 굽히지 않을 만큼 떳떳한 인간만이 진정 독립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8.15해방 64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아직도 나라와 민족을 되찾아 가는 중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송순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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