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 빗물을 받다

2009-08-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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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와 케냐의 접경지대 모얄레에는 물이 귀하다.

상수도가 없으니 하수도가 있을 리 없고 변변한 우물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빗물을 받아 마신다. 우기에 빗물을 받아두었다가 아껴 써야 한다. 자기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물은 다 자기 것이다. 혀를 내밀고 빗물을 맛보았는데 미국에서 야단스럽게 사먹던 병에 든 물보다 맛이 좋다.

8년 전 아프리카로 처음 단기선교를 나갔을 때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선교사 숙소에서 샤워를 하다가 물이 끊겨 애를 먹었다. 빈민가 사역을 하며 며칠씩 씻지 못하다가 화장실에 매달린 샤워꼭지를 보고는 너무 반가워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찬물이면 어떠랴. 한겨울이라 덜덜 떨면서 대충 몸을 씻고 머리에 비누를 잔뜩 칠했다. 그런데 아뿔싸! 더 이상 물이 나오질 않는다. 생각다 못해 변기통 안에 담긴 녹물을 찌그러진 종이컵으로 떠서…. 그 후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선교사님네 물탱크를 내가 바닥냈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직껏 미안하다.


그 후에 다시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는 선교팀 1인당 하루 3갤런의 물을 배급받아 썼다. 플래스틱 우유통 큰 사이즈가 1갤런이니 그것 3통을 가지고 마시고 씻는 일을 요령껏 해야 했다. 선교팀 가운데 날씬한 목사님 한 분이 나에게 물 한통을 양보하기도 해서 그럭저럭 버텼던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에서는 물이 곧 생명이다. 주민들은 물을 뜨러 하루 종일 먼 길을 걷고 어린 아이들도 맨발로 그늘 한 점 없이 메마른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졸졸졸 감질나게 나오는 물 한 통을 받기 위해 길고 긴 줄을 기다려야 하니 많은 이들은 그냥 더러운 냇물을 떠먹고 다시 수인성 질병, 기생충 등에 감염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모얄레에 세워진 크리스천 기숙학교의 물 사용량은 하루 최소 약 4,000리터. 이 물을 뜨기 위해 이원철 선교사는 매일 우물이 있는 곳까지 먼지 나는 울퉁불퉁 자갈길을 차로 대여섯 번씩 왕복한다. 그 분의 낡은 트럭 뒷칸은 아예 물통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했는데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물의 양도 많지 않고 실어 나를 무게도 한계가 있어 늘 물은 부족할 뿐이다. 물을 퍼나 르는 일로 하루에 다섯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 건물을 하나씩 지을 때마다 물탱크 자리도 하나씩 파두었다. 우기(4월과 11월 두달)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탱크 하나의 용량은 4만리터. 12개 건물에 물탱크 하나씩 해서 약 200명의 남자 고등학생과 현지인 선생님들이 10일을 견딜 수 있는 양이다.
지금까지 2개의 탱크가 완공되었다. 미국과 한국에 있는 기도 후원자들의 손길과 이 선교사님의 노고이다. 나머지 10개는 지금 기초 작업만 되어 있는데 여기에 PVC 재질로 내부 용기를 만들고 소금 등을 이용한 기초 정수과정을 설치하는데 물탱크 1개당 약 3,000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 언젠가 기도 후원자들의 정성이 모아져 물탱크가 완성되면 이 선교사님은 더 이상 물을 길으러 새벽부터 약한 허리와 어깨를 달래가며 먼 길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무렇게나 흘리며 마시는 물 한 컵에 그렇게 많은 목마른 생명이 달려 있었다.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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