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악산 7경 청계계곡 ‘과연 비경이로세’

2009-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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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국토 종단기 <15> 충북 수안보·제천

어제 월요일 인천공항에서 저녁비행기로 아내를 배웅한 다음, 김포에 있는 조카 집에서 잤다. 오늘은 국토종단을 시작하면서 방문하기로 예정해 두었던, 경기도 용인에 있는 헌산 중학교와 안성에 있는 한겨레중고등학교를 방문한 다음, 충북 수안보에 도착할 예정이다.


계곡따라 늘어선 각양의 바위들 자태
‘제2 금강’ 명성 망폭대엔 정삼품송이


헌산 중학교에 도착하니 오병갑 교장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 학교는 왕따나 학교폭력을 비롯한 여러 이유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설립된 유일한 대안 중학교다. 2003년에 개교 했으며 학생은 전국에서 지원하고 있다. 방학 동안에 실크로드 체험학습, 베트남 평화봉사 기행 등을 통해 국제적 안목을 틔워주고, 국토행진을 통해 조국사랑과 지구력을 길러주는 등, 독특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다 .
생각해 보니 이 학교 학생들은 한번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리는 아이들이다.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사람보다는, 넘어졌지만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이어 한겨레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2006년에 탈북자 자녀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다.
곽종문 교장선생님의 안내를 받았다. 열세 살부터 스무 살 정도의 학생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남북화해와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과정을 만들어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120명 정원인데 지원자가 넘쳐 재학생이 25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들 두 학교는 원불교 재단에서 세웠고 운영비의 일부를 정부로부터 보조받는다. 두 학교에 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밤늦게 수안보에 도착했다. 내일은 지난 토요일 멈추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월악산을 넘어 제천 쪽으로 갈 예정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여관방 창문이 흔들리는 통에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났다. 버스를 타고 지난번 멈췄던 자리에 갔다. 날씨가 맑다. 오늘부터는 혼자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며칠 쉬었더니 다리가 한결 가볍다. 혼자라는 게 홀가분해 좋구나 싶으면서도 어떤 일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문경. 단양 삼거리를 거쳐 복계리 농산물 센터를 지났다. 선권, 대사마을 표지판이 보이더니 월악 입구가 나온다. 월악산은 제 2의 금강산 혹은 동양의 알프스라 부르는 산이다. 나무숲 사이를 비집고 아침 햇살이 비친다.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오르막길을 넘어서니 백남농원 간판이 보인다. 복숭아, 사과, 자두 꽃이 만발했다. 철따라 바뀌는 대자연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농장 주인이 부럽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라고 누군가 한마디 하겠다.
미륵리 삼거리다. 계속 가면 미륵사지, 대광사가 나오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송계계곡, 영봉, 만수동이 나온다고 이정표가 말해준다.
송림 우거진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데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만수계곡을 지나는 곳에 ‘생태계 자연학습장’이라는 사인이 보인다. 경치가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니 제천시 한수면 표지판이 서있고, “월악산이 있는 제천입니다” 안내문이 눈에 띈다.
이곳이 월악산 제7경으로 유명한 청계계곡이다. 월악산 영봉을 비롯하여 자연대, 월광폭 포, 수경대, 학소대, 와룡대, 팔랑소, 망폭대를 청계8경이라 한다. 계곡을 따라 걸어가는데 멀리 혹은 가까이서 바위들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울창한 산림을 따라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이 눈길을 잡는다. 절경을 만끽하면서 천천히 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을 몇 번씩이나 멈추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경치다.
월악 송어양식장을 지나니 닷돈재 주차장이 나온다. 닷돈 고개다. 삿갓 쓴 노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모양의 장승이 세워져 있다. 식당집 주인아주머니에게 닷돈재의 내력을 물었다. 이곳은 단양과 문경 지름길인데, 옛날 주막이 있던 곳이란다. 이곳 주막에서 먹고 자고 윗마을 미륵리까지 짐을 날라주면서 닷 돈씩을 받았는데, 그 때부터 이곳을 닷돈재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골미길’ 부근에 수로공사가 한창이다. 길 이름이 예쁘다. 망폭대가 나온다. 망폭대는 제2의 금강이라 칭하는 기암과 고무서리 계곡을 굽이도는 맑은 물이 어우러진 절벽이다. 절벽 위 노송은 속리산 정이품송을 닮았다 하여 ‘정삼품송’이라 부른다.
망폭대를 지나 덕주골이다. 어느 묵객이 시 한수를 지어 놓았다. ‘덕주골’ 이라는 시다.
“오백 리 마흔 잿길 달빛 밟고 넘었으리 / 심심산속 깊은 골에 즈믄꿈 묻었으리 / 공주님 갑옷 벗으시고 시름 에워 사신 곳 // 월악의 만장봉에 옛빛이 설핏하니 / 영고는 구름이요 정한 또한 바람인데 / 덕주골 천년사연이 물소리로 흐르네 ”
덕주골을 따라 올라가면 덕주사가 있단다.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송계리, 시내버스 종점이다. 식당이 여럿 보인다.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다는 기쁨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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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숲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월악산 청계계곡. 보는 것 만으로도 절로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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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자녀들을 위해 2006년 설립된 한겨레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검도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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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계곡 닷돈 고개를 알려주는 나무 조형물. 삿갓노인을 비롯한 여러 모양의 장승들이 이채롭다.

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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