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7-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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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짱 만들기

남편이 나를 좋아한 것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나의 키다. 친정부모님의 좋은 유전자중에 큰 키를 물려 받았나보다. 반면 남편은 키가 그리 크지 않다. 키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지 신부감 필수 사항 중에 큰 키가 들어 있다고 했다. 덕분에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외출할 때는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우리부부의 유전자중에 유독 키만은 나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음식을 골고루 먹지도 않는 승욱이가 저렇게 쑥쑥 반듯하게 자라는 것은 모두 나를 닮아서인 것 같다. 길쭉길쭉한 팔다리, 떡 벌어진 어깨, 몸의 균형이 얼마나 완벽한지. 그런데 완벽한 몸매의 승욱이가 어느 날부터 몸에 살이 붙기 시작이다. 처음에는 흔히들 말하는 가슴근육인줄 알았는데 점점 물컹물컹한 것이 모두 살이다. 목욕을 시키면서 자세히 보니 상체에 주로 살이 붙었다. “승욱, 요즘 달리기 안 하니? 밥 먹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거야?”

주말에 오면 저녁시간에 산책을 했는데 처음에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조금만 힘들면 다리를 꼬고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힘들다는 표현이다. 조금 천천히 뛰기를 시도하니 몸을 마구 흔들면서 뛴다. 그만큼 시각장애인들은 뛸 때 균형감각을 잡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승욱이의 어깨를 붙잡고 어깨를 쭉 피게 하고 팔을 앞뒤로 흔들며 다리를 위로, 아래로 반듯하게 뛰는 것을 연습시켰다. 처음에는 손 따로 발 따로 멀리서보면 연체동물 허우적거리는 모양이다. 10미터를 뛰고 쉬면서 자세를 교정해주고 또 10미터를 뛰고 자세를 교정시켜주니 제법 달리기 폼이 나온다. 첫 주는 교정해주느라 저녁 해가 져버렸다. 그 다음은 좀더 잘 달린다. 이젠 달리면서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려고 한다. 좀 빨리 달리면 내 손을 더 꽉 잡는 것이 행여나 엄마가 달리면서 손을 놓을까봐 어지간히 신경을 쓰면서 뛰나보다.

동네 뛰기를 한 달을 하니 아, 미치겠다. 승욱이는 일취월장 점점 잘 뛰는데 엄마는 조금만 뛰어도 헉헉거리니 승욱이의 체력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지치는 기색도 없이 신나서 뛰는 아들에게 이젠 내가 끌려간다. “천천히 뛰어, 헉헉 숨차”

시작은 그랬다. 아들의 상체에 붙은 살들을 정리해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요즘 나를 오래간만에 보시는 분들이 “어? 승욱 엄마 요즘 살빠졌네..운동해요?” 그러니까 아들의 몸을 짱나게 만들어주려다 엄마가 몸짱으로 등극하려고 하고있다. 이건 아닌데 어쩌다 이 더위에 땀나게 뛰고 있는지. 아들아 살살 좀 뛰자.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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