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운 진달래, 넉넉한 시골인심도 그대로

2009-05-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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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

고운 진달래, 넉넉한 시골인심도 그대로

시골의 인심은 아직 넉넉하다. 자신의 집을 빌려준 무주군 안성경찰서 한봉진 경감(오른쪽 키 큰 이)과 포즈를 취했다.

고운 진달래, 넉넉한 시골인심도 그대로

무주군의 한 벌목장. 이 지역은 하늘로 직선으로 뻗은 나무들로 울창한 숲으로 이루고 있다.

국토종단 열 하루째다. 진안읍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남자용 화장실에 소변기만 설치되어 있다. 하는 수 없이 여자용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아 있는데 진땀이 다 났다. 남·여 화장실 구분이나 말던지. 이 집 주인 남자는 소변만 보는, 좀 특별한 사람인가…


종단 중 만난 생면부지 안성경찰서 경감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라”넘치는 대접


무주를 향해 걸어간다


논에서 농부가 거름을 뿌리고 있었다. 퇴비 한 포에 1,800원이라고, 그리고 직접 퇴비를 만들지 않고 이렇게 사다가 쓴다고 했다. 흔해 빠진 풀을 베어다 썩히면 퇴비가 되는데, 퇴비를 사다 쓰다니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옛날 농사지을 때 새벽이면 일어나 풀을 한 짐 베어가지고 들어와 아침을 먹던 일들이 떠올랐다.

삼전면 경계. 두 분 아주머니와 촌노 한 분이 진안읍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안의 특산물은 마이산 머루와인, 흑돼지, 더덕, 씨 없는 곶감 등이라며 많이 선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용담호가 보였다. 전주권 도시의 상수도원이다. 가뭄이 심해 물이 많이 줄었다. 곳곳에 널린 붕어찜 간판이 외지인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었다. 멀리 산등성이의 나무숲이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이발한지 보름 쯤 된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

길가 언덕에 진달래가 곱다. 단풍은 북쪽에서 남하하지만 진달래는 꽃을 피우며 북쪽으로 올라간다. 저 꽃이 분단의 벽을 넘어설 즈음이면 우리도 통일전망대에 도착할 것이다.

봄볕이 따사롭다. 한적하다. 길이 가파르다. 아내의 손을 잡고 걷는다. 말이 없다. 말이 없어도 통한다. 누룩이 밀가루반죽에 스며들면, 서로 엉키어 녹아드는 세월이 지나면, 부풀어 오른 먹음직스런 빵이 된다. 혼자서 피식 웃는다. 아내가 쳐다본다. 그렇다. 남편이 아버지 같고 오빠 같고 아들 같아지면 그 사랑은 비로소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수동터널을 지나니 월포대교가 나왔다.

길이 1,050미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또 터널이다. 블로치 터널(440미터). 길이 잘 뚫렸다. 트럭이 원목을 싣고 지나가고, 곳곳에 나무를 베어내고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안천면 정류소 가까운 지점에서 경찰차가 갑자기 우리 앞에 섰다. 불심검문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경찰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말을 걸어오는 분은 경감이다. 두 분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 어디를 가시느냐고 묻는다.

“국토종단 중인데 지금 무주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다음 오늘 어디서 잘 계획이냐고 묻기에, 숙소가 마땅치 않으면 무주로 들어가 자고, 내일 아침 다시 그 곳으로 와서 걸어갈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경감이 “무주군 안성이 우리 집인데 자고 가시겠냐”고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했다. 아내가 “그래주시면 고맙지요”얼른 대답한다. 오늘 밤 잠자리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상리마을을 지나는데 마을 앞에 돌탑을 쌓아 놓았다. “우리 마을은 약240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진안군에서 유일하게 대나무가 번성하는 곳이다. 이 돌탑은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복을 불러주고 재난과 화를 면해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며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다… 지금도 돌을 쌓으며 소망을 비는 긍정적 자기암시의 대상물이 되고 있다.”는 설명문이 붙어있다. 옆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가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무주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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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 반딧불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자연보호 노력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반딧불이와 함께! 자연주의가 좋다!”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무주구천동에 살아있다는 반딧불. 개똥벌레, 그 흔했던 개똥벌레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고 한다.

반딧불이를 생각하면 내 암울했던 스무 살이 함께 떠오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던 시절. 끝없이 방황하던 그 시절. 밤이면 뒷등 비석거리에 혼자 앉아 밤하늘을 종횡으로 누비는 반딧불이를 바라보곤 했었다. 까만 하늘에 금실로 수를 놓아 길을 만들어 가던 개똥벌레를 쳐다보며 나도 길을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다.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밀리며, 훅 불면 사라질 것만 같던 개똥벌레는 나에게 길을 가르쳐준 선생이었다.

낮에 만났던 분이 6시에 업무가 끝나니 모시고 가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름을 밝혀도 괜찮을 성 싶다. 안성경찰서 한봉진 경감이다. 무주군 안성면 그 분의 자택에 갔다. 덕유산이 바라보이는 청정지역이다.

편안히 주무시라며 집을 통째로 내어준다. 친구인 서성기 전주방송 안성지사장과 함께 영양보충을 해야 한다며 갈비 집에서 저녁을 대접해 준다. 알지 못한 사람에게, 헤어지면 그만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넘치게 대접을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살아나고, 세상이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찬열
도보 국토 종단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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