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락없는 ‘말의 귀’ … 학창시절 추억 새록

2009-05-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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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을 지나며

온통 까만 지붕들 복분자밭 이채
은천마을 화마 막는 돌거북 세워


국토종단을 시작한 지 열흘 째.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에서 시작했다.

‘관촌’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관촌수필’. 혹시 이곳이 책을 쓴 이문구씨의 고향이 아닐까 싶어 아침을 먹으면서 식당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모르는 사람이란다. 후에 알아보니 그의 고향은 충남 보령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무대 역시 이곳 관촌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수천 명이 사는 시내 한 복판’이라는 사실을 그가 쓴 글을 통해 확인했다.


임실군은 치즈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이민자정보센터’라는 간판이 보인다. 무엇하는 곳일까. 얼른 집히지 않는다.

길가 촌로에게 진안읍까지의 거리를 물었더니 차로 20분 정도, 거리는 50리쯤 될 거라고 한다. 진안까지 걸어간다고 하니 “워메, 그 먼 길을 걸어갈라고요. 못 간당게, 차타고 가야제.” 손을 내젓는다. 남쪽이라면 틀림없이 “못 간당께” 했을 것이다. ‘께’와 ‘게’. 남도와 북도의 미묘한 사투리의 차이를 느낀다.

진안군 성수면 표지판이 보였다. 좌포터널을 지나 양산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풍혈냉천’이란 간판이 크게 걸려 있다. 지나는 분에게 그 뜻을 물으니, 날이 더울수록 바람과 물이 차다는 말이란다. 여기가 풍혈냉천 고장이어서 여름이면 사람이 많이 놀러온다고 했다.

사슴농장이 나온다. 사슴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산 벚꽃 핀 계곡아래 물이 맑다. 냇물이 산줄기를 휘감아 부드럽게 흘러간다. 길도 물 따라 둥글게 돌아간다. 저렇게 굽이굽이 에돌아가는 길은 더디지만 정다운 길이다. 산천을 벗 삼아 가는 길이다.

쉬었다 가자며 길가 언덕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 참 아름답다. 자세히 보아야 이렇게 예쁜 것이 보인다.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 당신도 그렇다.

지방도로 745번 삼거리에서 마이산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좀 돌아가더라도 마이산을 보고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원강정 마을, 60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 옆 정자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잠이 달다. 자고 나서 둘러보니 느티나무의 둘레가 7.4미터, 높이 15미터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표지석 옆에 ‘4way test’를 돌에 새겨 나란히 세워 놓았다. 1. 진실한가 2. 모두에게 공평한가 3.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4. 모두에게 유익한가.


마령면 정류소 근처에 캠페인을 나온 지방 공무원들이 어깨에 휘장을 두르고 있다. 우리를 환영 나온 사람들 같다.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 먹었다.

마이산 가는 길 양쪽에 벚꽃이 심어져 있다. 꽃망울이 여물었다. 논에 거름을 뿌리는 부부에게 물어보니 고추농사를 준비하는 중이란다. 순창, 임실, 진안 지방은 고추를 많이 심는다. 까맣게 비닐지붕을 덮은 것은 복분자밭과 인삼밭인데 평지에 있는 것은 대부분 인삼밭이라고 한다.

마이산. 이름 그대로 산이 말의 귀 모습을 닮았다.

아내가 학창시절 마이산에 놀러왔던 얘기를 풀어놓는다. 세월이 지나 남는 건 추억뿐인가. 그래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가.

은천마을을 지나다 돌거북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 돌거북은 은천마을 수호신으로 세워졌다. 기미년(1919)에 마을이 큰 화재로 전소하는 일이 생기자 마을 남쪽의 써리봉이 풍수상 화산(火山)이어서라고 믿고 수신(水神)인 돌거북을 세워 화재를 막고자 경신년(1920)에 거북상을 조각하여 이 자리에 세웠던 바… 도난당하여 다시 세운다-2005년 한가위, 은천마을 주민 일동-’이라는 내용의 설명문이 옆에 새겨져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네모진 나무판에 못자리용 모판을 만들고 있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요즘은 못자리를 이렇게 만든단다. 집안에서 모를 기른 다음 모내기철이 오면 기계가 모를 심는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품앗이를 하고, 못줄을 떼어가며 흥겹게 모내기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월남 모자를 쓴 여인이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지난해에 월남에서 시집 온 며느리라고 시어머니가 대답한다. 며느리는 스물한 살.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나이를 물으니 마흔아홉 살이란다. 농사는 50마지기 정도 짓는다고 했다.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던 ‘국내·국제결혼 전문. 베트남·필리핀…’ 광고가 생각난다. 관촌에서 보았던, ‘이민자정보센터’라는 현판도 떠오른다. 농촌으로 시집 온 외국인 신부가 늘어나면서, 신부는 물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교육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 농촌의 새로운 모습이다.

내일은 전라북도 무주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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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령면 부근에서 바라본 마이산. 이름 그대로 말의 귀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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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마을 돌거북. 1919년 큰 화재를 당한 뒤 세워진 이 돌거북이 마을을 화마로부터 보호해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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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밭 전경. 곳곳에 복분자를 많이 심어 놓았다.


정찬열
도보 국토 종단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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