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의 눈

2009-05-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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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삶의 영상이다.

다음은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이란 책을 쓴,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레익우드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TV 설교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양로병원의 같은 방에 두 노인이 함께 입원해 있었다. 두 노인은 모두 중풍 후유증으로 거동을 못한 채 온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런데 창문쪽 침대에 누워 지내는 노인은 매일 함께 지내는 옆 노인에게 창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해 주곤 했다. 매일매일 아름다운 햇살과 꽃들과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이야기며, 등교하느라고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어떤 날은 멀리서 고등학교 악대가 멋진 음악을 연주하면서 시가행진을 하는 풍경과 잘 차려입은 멋진 남녀 한 쌍이 팔짱을 끼고 행복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 주었다. 그 노인은 매일 같이 모든 좋은 일들을 주제로 말해 주었다. 옆의 노인은 침대에 누운 채 창가의 노인이 밖을 내다보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로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얼마 후 창가의 늙은이가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애도하는 노인은 자기에게 날마다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던 옆자리의 친구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자기 자신이 친구가 사용했던 창가의 침대로 자리를 옮겨 직접 바깥 풍경을 바라다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침침해진 눈으로 창문 밖을 보았을 때 그곳에는 옆 건물의 우중충한 벽 외에는 아무런 풍경도 없었다. 간호사의 설명으로 그는 뒤늦게 비로소 세상을 떠난 창가의 노인이 눈은 뜨고 있었지만 실은 ‘장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주위의 사물을 바라다보는 것은 바로 사고요 생각이요 비전이다. 사고와 생각과 비전은 그래서 육체의 눈을 뛰어넘어 바라다볼 수 있는 내적 능력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장님도 마음으로 주위 사물을 그처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눈앞의 넓은 대지와 머리 위의 창공조차도 우리가 어떤 비전의 안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초록색 색안경으로 보면 모든 것이 싱그러운 초록색 초원으로 보인다. 허나 붉은색 색안경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길처럼 붉게 보인다. 결국 우리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삶의 색안경은 바로 ‘마음의 눈’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다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우리 삶이요 세상이다. 철따라 아름다운 꽃이 피고 과일이 열리며 새들이 노래하는 이 세상은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만 잃지 않으면 천국이 함께 하는 유토피아다.

그런데도 인생살이가 고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혹시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을 보려 하기에 생기는 부족함의 갈증 때문 아닐까. 분명코 짜증나고 힘들고 고된 인생살이는 우리에게 ‘마음의 눈’을 뜨고 긍정적인 비전의 색안경으로 바꾸어 살라고 하는 무언의 경고사인이다. 요즈음 같은 경기침체엔 그래서 어려움 가운데서 희망을 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눈’이 우리 모두에게 더욱 절실한 것 아닐까.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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