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It’s Our Turn!

2009-05-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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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일 토요일 새벽, 저는 월드비전 창설자 밥 피어스 목사님의 둘째 따님이신 메릴리 피어스 여사와 오렌지카운티의 남가주사랑의교회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특별 새벽예배인 ‘비전 워십’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동녘 하늘을 환한 빛으로 뒤덮으며 창공을 향해 웅비하는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바라보며 문득, 약 60년전인 1950년, 전쟁으로 고통 받던 한국에서 한 새벽에 있었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피어스 목사님께서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한 사건입니다.

“1950년 12월, 어둠이 짙게 깔리고 얼음으로 미끄러운 대구의 어두운 길을 저는 헤치고 한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차가운 예배당에 수많은 교인들이 문밖까지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되는 것을 본 전쟁 미망인들과 어린 아이들도 있었고, 서울에서 200마일이나 되는 길을 걸어온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교회당은 비극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공포, 고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목사가 설교할 순서인데 헌금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헌금이란 말입니까? 목사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헌금은 이 도시에 밀려들어온 피난민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찢어진 옷 한 벌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아침 옷을 헌금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씩 옷가지를 가지고 나와 제단 앞에 드렸습니다. 병색이 완연한 어떤 남자는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 성찬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한 어머니는 안고 있는 아기의 스웨터를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추위에 아이가 떨자 자기 옷 속에 품고 아기의 몸을 따뜻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날의 헌금은 ‘세상에서 가장 희생적인 헌금’이었고, 그날의 기억은 월드비전 창설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창설된 월드비전을 통해 수많은 해외 후원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20만명이 넘는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이 삶의 희망을 찾았습니다. 수천의 한국 교회가 부흥의 기초를 얻었습니다. 그 수혜금액은 무려 1억달러가 넘었습니다.

사랑의 교회 비전 워십의 주제는 ‘It’s our turn‘이었습니다. 김승욱 담임목사님은 어린아이부터 노인분들까지 3대가 모인 자리에서 사랑의 빚에 대해 역설하였습니다.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사건들을 기억의 전면으로 끌어내며 “이제는 받은 사랑을 우리가 갚을 차례”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또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자녀 세대에게 물려 줄 유산”이라고 일깨우셨습니다.

자신보다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분을 아버지로 가졌던 메릴리 여사의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메시지를 듣는 성도들의 눈에도 눈물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60여년이라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마치 피어스 목사님이 참석했던 1950년 겨울, 대구의 새벽예배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피어스 목사님 대신 그 분의 딸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그 날이 우리 자신이 아닌 고통 받는 다른 나라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인 5월3일 주일 예배는 ‘It’s our Turn‘을 실천하는 예배로 드렸습니다. 성도들은 무려 1,514명의 전 세계 아이들을 후원아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60여년전 가진 것이 없어 아이의 옷가지를 벗어 드렸던 그 헌금이 60여년이 지나 1,514명의 아동들을 위해 드리는 넘치는 헌금이 되었습니다. 그 토요일, 메릴리 여사와 함께 가슴으로 받았던 캘리포니아의 용솟음치는 태양은 우리 민족의 미래와 닮았습니다. 고통을 딛고 일어서 이제는 나누는 백성으로 업그레이드된 우리 민족의 사랑으로 가득찬 미래 말입니다.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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