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먼저 믿어줄게

2009-05-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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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려던 딸이 갑자기 이렇게 묻는다. “엄마, 난 행복해, 엄마가 나를 믿어주니까~^^” 아침부터 뭔 뚱딴지 같은 소린가 했지만 길게 얘기할 시간도 없고, 순간적으로 아이를 인정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팔 벌려 허그를 해주며 “그럼~ 그럼~ 믿고 말고~!!!”라고 엄마표 사랑도장을 꾸욱~ 눌러 찍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나를 믿어주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먼저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사실 내가 믿을 만하지 못할 때, 어리고 미숙할 때 나를 믿어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리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더라도 이 이야기는 금방 이해가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누구든 서툴고 미숙하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라는 딱지를 떼고 나서야 점점 숙련되어지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과해야 리더로 세워진다. 믿음이 필요한 이들이 어디 지도자뿐일까. 부부사이도, 자녀교육도,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믿음을 빼면 아무것도 성립이 안 될 만큼 ‘믿음’은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단어가 요즘시대엔 너무 식상해져 안타깝다. 믿는다고만 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믿음’이라는 단어 앞에 진짜, 참, 원조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냥 믿어주면 진짜 손해 보는 것일까? 믿을 만해야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일까? 속이는 줄 알면서도 믿어주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까? 믿음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진정한 믿음을 보인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다. 그렇지만 우린 지금도 서로를 믿는 믿음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목사와 교인, 대통령과 백성, 이 모든 관계가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믿음을 붙잡지 않고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고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진리는 항상 단순하다. 어려운 공식에 끙끙거리며 대입하지 않아도 그냥 보이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바로 정답인 것이다. 내가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 주는 마음,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원할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다가가는 발걸음, 지금 내가 부족해도 내 안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듯이, 상대방에게도 보이지 않는 보물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배려와 사랑, 생각이 났을때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전화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작은 관심들…. 이런 것들이 서로에게 믿음을 주게 하고 세상을 살맛나게 해 주는 힘이 아닐까?

믿음으로 살면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꼿꼿하게 미래를 직시할 수 있는 시력이 생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도 사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군중을 좇아가는 우유부단함이 아닌 용기 있는 정의,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는 넓은 통찰력과 대범함, 어떤 사건을 지나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겸손을 소유하는 것, 결국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는 사랑을 삶으로 보이는 것이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믿어 주세요”라고 외치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믿고 있다고 작은 미소와 친절한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살맛나는 곳이 될 것이다.


정한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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