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앙생활은 천천히, 그러나 쉼없이”

2009-04-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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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릴백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총장-석태운 목사회장 대담

“신앙생활은 천천히, 그러나 쉼없이”

피터 릴백(오른쪽)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교 총장과 석태운 한인목사회장이 대담을 갖고 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성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슬러 변화시켜야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복음을 몸으로 살아내는
거룩한 목사가 있어야 가능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 신학교육 기관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필라델피아 소재)의 피터 릴백(55) 총장이 최근 한인 교계를 방문,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80년 전 개교, 칼빈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정통 신학의 요람으로 성장한 이 학교의 수장인 릴백 총장은 세미나 후 석태운 남가주 한인목사회장과 가진 대담에서 “성경 앞에서 부드러운 양심을 갖고 예수님을 매일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성화다. 천천히 그러나 쉬임없이 그 과정을 이뤄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시안 250여명(대부분 한인) 등 약 750명의 재학생과 약 6,000명의 동문을 가진 이 학교 총장으로 지난 2005년 취임했으며 20년 전부터 프러클러메이션 장로교회의 담임목사직도 수행해 오고 있다.

대담은 석 회장의 질문에 릴백 총장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소감은.

“3년 전 한 번 찾았다. 웨스트민스터 동창생들을 만나고 교회들을 방문했다. 서울 사랑의교회에 갔었는데 열정적 예배에 놀랐다. 또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서 파워풀한 씨앗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일으키신 특별한 섭리와 역사를 생각하며 큰 감동을 느꼈다. 어쩌면 조만간 동남아를 방문하는 길에 한국에 들를 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의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너무 빠른 성장을 한 탓에 세심한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한 점이다. 예를 들면, 다이내믹한 선교를 하지만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황화(contextualization)와 다른 선교단체와 협력을 잘 못한다. 이는 리더들의 신앙인격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이번에 성화를 주제로 강의했는데, 성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예수 닮음(Christlikeness)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엔 예수님을 본받아 세상에 ‘복된 소식’(복음)을 전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현대교회와 성화의 관계는. 또 성화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인들은 현대 문화 속에서 현대 문화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죽은 물고기도 강물을 따라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연어 같이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강물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달라야 한다. 다름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다르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다.

-성화와 칭의의 차이는.

“칭의는 성령의 일이다. 은혜, 복음, 말씀이 필요하다. 에드윈 파머의 표현을 빌자면 ‘칭의는 100%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의 역할은 0%다. 그러나 성화는 100% 하나님의 일인 동시에 100% 인간의 일이다. 성화를 위해 우리는 산고를 겪어야 한다. 크리스천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날마다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성화는 목회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성화는 특히 목사들에게 중요하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거룩한 목사가 있어야 한다. 목사는 모두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잘 안다. 크리스천은 누구나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특히 목사는 더욱 그래야 한다. 목사는 다른 목사나 교인들을 비판하는 대신, ‘나는 구주가 필요하다’는 고백으로 복음을 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
-거룩을 추구함에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 앞에서 부드러운 양심을 갖는 일이다. 항상 내게 주시는 메시지라는 자세로 말씀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교만으로 이끄는 불건전한 양심 대신에 건전한 양심을 소유하게 된다.”

-크리스천이 의로움을 얻고 나서도 성화에 진전이 없으면 어쩌나.

“요요 현상이 있을 수 있다. 신앙 생활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다. 매우 느리게 걷는 것이다. 성화는 마치 등산을 할 때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뒤돌아 보면 꽤 많은 거리를 올라 왔음을 깨닫는 것과 같다. ‘천천히, 그러나 쉬임 없이’(slow, but steady), 이런 자세로 해야 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다.”

<정리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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