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이 오면 나는

2009-04-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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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봄이 오면 나는’이란 시의 머리 부분입니다. 항상 우리들에게 정갈한 영혼의 소리로 잔잔한 감동을 주던 수녀님은 지난해 여름, 암선고로 대수술을 받고 혹독한 항암 치료 중에 있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위로 방문차 들른 지인들에게 “태어나 처음 큰 수술을 받으면서 하느님과 저 세상에 먼저 가 계신 엄마를 수없이 불렀다.”면서, 수술 전후의 곤혹스러웠던 심정을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사실 너무 아프니까 좋은 생각도 잘 안 나고, 기도도 잘 안된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병을 미워하지 말고 친구처럼 잘 지내라고 하더라고요.”

이어서 수녀님은 강한 투병 의지를 보이며, 그 기간 을 자기성찰의 좋은 기회로 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야지요. 두렵기도 하지만 겪어야할 고독한 싸움이니까 잘해 보려고 해요. 이젠 내 안으로 들어가서 사막의 체험을 해야겠어요. 재충전의 시간도 가질 수 있으니 선물이고 또 기도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수녀님은 지금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지독한 ‘봄앓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신앙하는 종교는 다르지만, 수 십 년 동안 수녀님과 맑고 향기로운 정신적 교감을 나누어 온 법정 스님도 2007년 겨울 크게 앓고 난 후, 이런 법구를 인용하면서 투병의 소회를 밝힌바 있습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평소 호흡기가 좋지 않았는데 크게 앓게 되었다는 스님은 “이제는 회복됐는데 앓고 나니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음악을 들으니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의 잔고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특히 앞으로 이웃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일부러 거리를 두고 멀리하느라 인정머리 없이 대한 것이 죄송했다며, “이제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하루하루 내 의지대로 살수 있다는 것, 차 마시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채소밭 가꿀 수 있다는 것이 모두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수녀님, 법정스님 두 분과 긴 세월 곱고 기품 있는 인연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작가 최인호 선생 역시, 지난 해 6월 침샘 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생은 월간잡지 샘터 3월호에 기고한 ‘새봄의 휘파람’에서, 그간 투병과정에서 겪은 ‘무자비한 욕망의 한계와 사람을 더욱 깊고 강하게 만드는 병의 은총에 대한 깨달음’을 진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수술 후 마비됐던 입술이 조금씩 풀려 ‘새봄의 휘파람’을 불게 됐다며, 투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과 격려로 글을 맺었습니다.
“내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내 다정한 아픈 사람들아, 그대의 병을 대신 앓고 싶구나. 아프지 말아라. 이 땅의 아이들아, 내 누이들, 내 어머니, 그리고 이해인, 김점선아, 이제 그만 일어나 나오거나 창밖을 보아라. 새봄이 일어서고 있다.”


박재욱(LA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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