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소유디자인그룹 대표)
물질주의, 전쟁, 타락 등 망국의 길로 돌아 선 로마제국과 더불어, 구원을 주제로 삼는 설득력이 강한 종교인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천주교가 필자의 종교적 배경인 관계로 이 당시의 건축적 실체를 사회적, 종교적인 관점에서 자세히 다루어 볼까 한다. 기독교는 유대인의 가르침과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주로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에 집중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메시아이며 신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었지만 다시 부활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위대한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이 세상에 재림할 날이 임박해 있다고 믿었으며, 그에 따라 그들의 전도도 급해졌다.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의 기독교인들이 거둔 엄청난 성공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음이 분명하다.기독교에는 주신제가 없기 때문에 동방의 이교도 의식과는 구분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기독교는 유일신을 섬겼으므로 황제의례의 이교도적 행사에 대한 참여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배타성은 몇 권의 성서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 성서들은 유대교와는 독립적인 기독교만의 것으로 기독교 성경의 한
부분이 된다. 이 성서들은 널리 인증되어졌으며 절대적 권위가 부여되었다.
원래 초기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종류의 기독교 건축을 세울 의도는 없었다. 이들은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2가지 종류의 종교건물 형태를 알고 있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신전이며 또 하나는 주일 평예배와 교육을 위한 모임 장소로서 여러 도시에 세워져 있는 유대교회당(Synagogue)이었다.313년 후에 기념적인 기독교 건축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중요한 사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기념적 건축의 출발점으로 이교도적인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교회는 처음부터 신의 주거가 아니고 신을 믿는 사람의 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공공집회용 건물로 설계된 양식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로, 이중에서도 바실리카 울피아가 좋은 예이다. 즉, 기독교 건축의 근원은 종교적 이교도의 건축이 아닌 속세적 이교도 건축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초기 기독교의 바실리카식 교회인 직사각형의 건물형태에 관해서만은 특히 그러하다. 중앙 집중적인 초기 기독교 건물형태인 마르티리움 역시 고대 로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은 황제의 영묘로서 이중 스팔라토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에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따라서 2가지 건물 형태가 생겨나게 되었다. 하나는 초기 기독교의 바실리카식 교회로서 제단을 위한 앱스가 한쪽 끝에 부착되어 있는 직사각형의 건물로 되어 있으며, 형태상으로 볼 때 통로로서 해석되는 직선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마르티움으로서 원형의 건물로 되어 있으며, 형태상으로 볼 때 중심으로 해석되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건물형태는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되고 결합되어지고 있다.통로로 해석되는 직선과 중심으로 해석되는 점을 형태의 주요소로 취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이 2가지의 기본적인 실존적 의미에 새로운 기독교적 해석을 덧붙이게 되었다.또한 이들은 고대의 기독교 건축으로부터, 특히 동적인 성격과 인간적인 척도에 대한 감각과 같은 몇 가지 장점들을 취하였다. 기독교 건축은 초기 기독교의 바실리카식 교회로부터 발전하여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 서양 건축의 역사를 주도하며 남부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교회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끝을 맺게 된다.이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피어쩐하일리겐 성당을 들 수 있다.다음 회에는 유명한 성당 건축물들을 하나하나씩 연대별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