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한 자화상

2009-04-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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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만큼 불쌍한 인생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다. 자기 사랑은 본능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한다. 허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자신을 보잘 것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함부로 살고 있는가. 혹시 너무 못생겨서 사랑 받을 수 없다고 스스로 비하하며 괴로워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가망 없다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면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마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 약점보다는 자신이 지닌 장점에 시선을 둘 때 비로소 ‘건강한 자아상’이 자랄 수 있다는 말이다.

건강한 자아상은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한다. 이는 이기심과 자기애에 빠진 교만과는 정반대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남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이기심 때문에 남을 사랑하기는커녕 자신과 이웃을 괴롭히는 삶을 산다.

예수님은 그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 아닐까.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 때 다른 존재의 소중함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칫 자신은 제쳐 두고 남을 사랑하는 것만이 사랑의 기본인듯 순서를 착각하며 살 때가 있다. 그리고 겸손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신의 고귀한 존재 의미마저 낮추려는 우를 범한다. 진정한 겸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과 처지에 불평하는 대신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신앙인은 그래서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사순절 시기에 그런 위험성이 많다. 우리는 예전에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죄인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그분의 십자가상 피 흘리심의 구속 공로를 힘입어 ‘무죄선언’으로 씻겨져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지 않는 이교도처럼 아직도 옛날의 죄인인양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자기 비하에 빠진다면 사순절이 요구하는 참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회개’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던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려 내시기 위해 흠 없는 하느님께서 대신 죽음을 택하신 그 사랑에 대한 감사와 보답이다. 주님께 대한 사랑의 보답은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통회와 함께 죄에서 풀려난 자의 기쁨으로 새출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수고수난하신 그 크신 사랑이 헛되지 않게끔 ‘새사람’ 되어 살겠다는 마음의 내적 결심이 회개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가슴 벅찬 효심이 바로 참회요 회개란 말이다.

예부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 때문에 새사람의 꿈이 주님의 부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연결돼야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김재동<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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