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 대 여자

2009-03-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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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함께 일했던 간호사가 오랜만에 오피스로 찾아왔다.

그때는 싱글이었는데 그 사이에 남편과 아기까지 식구가 늘어나 있었다. 교회 청년부에서 만나 지금도 열심히 봉사하며 재미있게 산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악수를 했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근데 정말 몰라보겠는 걸! 딴 사람이 되었잖아!


내 오피스에서 같이 일하는 몇 년 동안 그녀는 너무나 씩씩한 이미지로 환자들을 압도했다.

실제로 어떤 환자들은 “그 남자 간호사가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안 아프게 해 주었어요”하고 말하기도 했었다. 남자 간호사라니,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내가 얼른 어색한 장면을 수습하려고 하면 그녀는 또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하, 괜찮아요, 저두 언젠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날 겁니다”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남자 간호사’는 그 사이에 완전히 새색시 이미지로 변해 있었다.

웃을 때도 입을 가리고 호호호 예쁘게 눈을 내리 깔았고 미국인 남편 앞에서 몸가짐이 그리도 조신할 수가 없었다. 그날 다 같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남편이 ‘여자는 남자에 따라 변신한다’고 하면서 자기네 직장 동료가 정의한 남자 대 여자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우선 남자란. 모든 남자는 죄다 매우 바쁘다/ 그렇게 바빠도 여자를 만날 시간은 언제라도 낼 수 있다/ 여자를 만날 시간이 있다고 해서 여자들을 정말 잘 챙겨주는 것은 아니다/ 여자를 잘 챙겨주지 못 하는데도 주변에 늘 한두 명은 여자가 있다/ 주변에 붙박이 같은 여자가 있어도 남자들은 24시간 또 다른 여자를 향해 눈길을 돌린다/ 항상 딴 여자를 흘끔거리는 주제에 자기 여자가 떠나간다고 하면 불처럼 화를 낸다/ 여자가 정말 떠나가 버렸다 해도 정신을 못 차리긴 마찬가지. 다시 다른 여자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여자란.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안정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여자들은 끝없이 밖에 나가 뭔가를 사고 사고 또 사들인다/ 그토록 사들였건만 여자들은 끊임없이 입을 만한 옷이 없다고 불평이다/ 걸칠 만한 옷이 없다더니 외출할 때 보면 언제나 근사하게 빼입었다/ 아래 위로 쏙 빼입고 나섰어도 남들 앞에선 언제나 ‘아유, 이거? 오래 전에 입던 거야’ 라고 말한다/ 오래 전에 입던 거라면서 그래도 속으로는 칭찬을 기대한다/ 정작 칭찬을 해주면 믿는 법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별에서 왔다는 책(존 그레이/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을 읽고 나서 나의 여성관이 많이 개선되었는데, 이 간호사 남편의 이야기도 나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좋은 와이프 얻어 행복하겠다고 칭찬을 해주자 그 남편이 다시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이해할 수 없는 때가 딱 두 번 있는데 언젠지 아십니까?”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것을 보고 그 남편이 얼른 답을 말했다. 한번은 결혼하기 전이고 또 한 번은 결혼한 후란다.

평생을 살아도 이해하지 못할 여자와 죽을 때까지도 이해 받지 못할 남자가 만나 어떻게 부부가 되고 어떻게 아이를 낳고 죽는 날까지 살아갈까? 내가 묻자, 그거요? 간호사 남편이 한마디로 결론을 맺었다. ‘God only knows!’(하나님만 아시지요!)


김범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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