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신론 광고’의 딜레마

2009-03-25 (수)
크게 작게

요즘 런던에서는 시내버스에 나붙은 무신론 광고 한 줄이 화제다. 그 카피는 긴 인류사만큼이나 해묵은 구호다.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신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이제 걱정일랑 접고 인생을 즐기세요). 이 광고문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으로 퍼져 나가자 영국 기독교인들이 곧바로 반박성 카피를 내걸었다.

‘There is a God. BELIEVE. Don’t worry and enjoy your life!’
런던발 무신론 광고에서 한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probably)란 말이다. 이 광고를 낸 무신론자도 딱히 ‘확신’은 없었나보다. 이것이 무신론의 딜레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라. “하나님이 있습니까?” 대답은 둘 중 하나다. “잘 모르지만 없는 것 같다”거나 “잘 모르지만 있는 것 같다.” 둘 다 모른다는 건 똑같다. “내가 분명히 아는데, 하나님은 확실히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눈에 안 보인다”는 애매한 ‘물증’ 말고는 무신론의 확고한 증거가 희박한 탓이다.

성경은 세상에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단서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양심과 자연만물이다.

당신은 도둑질이나 거짓말, 간음이 죄라는 걸 안다. 단순히 특정 문화가 만들어낸 관습의 소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양심에 심어 두신 ‘법’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롬 2:15).

이 양심 때문에 사람에게는 완전히 거룩한 어떤 심판자에 대한 모종의 ‘안테나’가 작동한다. 인생을 맘껏 즐기려면 그 ‘까다로운’ 신이 없다고 믿는 게 속 편하다.

법칙대로 운행되는 자연만물의 질서 또한 그 배후에 존재하는 지성적인 인격체의 손길을 보여 준다. 사람의 몸 안에 꽉 짜인 기묘한 구조나 조화(시 139:14)뿐만 아니다. 지구의 24시간 자전 주기가 하루는 19시간, 다른 날은 34시간 27분으로 뒤죽박죽이면 어떻게 될까.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무신론은 어떤가. 어렴풋한 ‘희망사항’ 말고는 어느 하나 딱 부러진 증거가 없다. 합리적이려면 무신론자로 남을 수 없다. 성경 속의 하나님이 바로 그 창조주 신인가 아닌가는 그 다음 문제다. ‘뜻밖에 저절로 됨’을 뜻하는 ‘우연’만큼은 결코 창조자가 될 수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롬 1:20).

모든 인간이 원치 않아도 죽음을 맞는 까닭은 죄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이 피조계의 명백한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 역시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사 59:2).

이 죄로 인해 인간은 영적인 죽음, 곧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단절까지 경험한다. 하나님을 막연히 느끼되 뚜렷한 확신은 없는 무지, 파스칼이 말한 그 ‘초자연적인 실명’, 이것이 영적 죽음의 가장 흔한 증상이다. 애써 무신론을 퍼트리는 사람들조차 이 범우주적인 신드롬의 영향권에서 한 치도 비껴나 있지 못하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안환균<남가주사랑의교회 전도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