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울한 겨울이 가고

2009-03-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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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참 우울한 계절이었습니다.

북한 청진의 고아 돕기가 지난 3,4개월 중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초부터 중국이 곡물수출 금지 조치를 내려 고아들의 지원 품목이던 밀가루 지원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궁리 끝에 밀가루 대신 국수를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8개월여만에 이번에는 북한이 외국에서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매달 국수를 가지고 고아들에게 들어가던 우리 중국직원이 속수무책으로 하염없이 입국 허락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정치적인 현실은 잘 모릅니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을 알면 알수록 고아들을 먹이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고아들은 정치와 무관합니다. 그들에게는 배고픔이 현실이고, 우리는 그들을 돕는 일을 중요 과제로 삼습니다.

어떤 분들은 북한의 핵문제와 6자회담,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계획을 두고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더러는 북한을 지원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의견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참 우울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의 고아들을 돕는 일은 정치나 이념과는 무관합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효과를 보기 위해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분들은 북한의 정치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북한의 우리 동족들을 구별해야 합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당국자들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2,000만 형제들이 대부분 끼니가 어려운 형편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프리카도, 남미도, 아시아 빈국도 아닌, 바로 내 형제, 내 핏줄들이 오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현실에서 우리 자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북한 고아들이 겪는 형편이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지금 북한의 현실을 여러분에게 고자질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경제적 현실이 어렵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 현실에서는 비판하는 것보다는 돕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끔 눈물겨운 아프리카 어린이 현실을 보여주고 도움을 호소하는 TV 광고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북녘의 우리 땅에는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받는 우리 동족의 고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TV에 내 보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내 동족이고, 내 아이들이고, 내 핏줄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기 자식의 배고픈 현실을 TV에 광고로 내보내 도움을 요청하겠습니까?

또 우리는 고아들을 돕는 일에 선교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습니다. 배고픈 아기에게 우유 한 잔을 주면서 전도지를 쥐어주는 일은 선교도 아니고 예수 사상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대로 내 핏줄의 아기들을 먹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녘 동포 전체의 배고픔을 해결한 능력이 없습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재정으로 극히 일부분의 고아들에게 우유 한 잔과 빵 한 조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이 작은 보리떡이 예수님의 복을 받아 온 우리 동족들을 모두 배부르게 먹이고도 다섯 광주리가 남는 기적의 매개물이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다행하게도 북한의 외국인 입국 금지가 풀려 2월부터 중국의 우리 직원이 다시 고아들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고마운 일은 중국의 곡물수출 금지도 풀려 밀가루 지원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물가가 계속 뛰어서 우리가 돕는 지원품이 줄어들까봐서 걱정입니다.

내 동족을 돕는 일은 정치를 초월하고 선교를 초월합니다.


송순태(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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