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발 장애 때문이라 말하지 마세요

2009-03-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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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프게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청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두고 오가는 말들이 가족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고 전해 들었다. 이 사건을 기사화한 모 언론의 내용이 사실과 거리가 먼 게 많아 유가족들의 아픔을 배가시키는 것 같아 심히 유감이다. 이 청년이 마약 상습복용 때문에 일을 저질렀다거나 자폐증 환자였다는 내용이 바로 그 심각한 오류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아들은 결코 마약 중독자가 아니며 더욱이 자폐증 환자도 아니다. 여기서 자폐증을 환자라고 말하는 것부터 고쳐야겠다. 자폐증은 병이라기보다는 장애명이다. 아들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질환은 자폐증이 아니다. 기자는 글을 쓰기 전에 사실 확인부터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장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글을 썼으면 한다.

정신장애(발달장애)와 정신질환은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 정신장애가 일반인보다 범죄율이 높다고 단정 지을 만한 통계는 없다.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는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일반인보다 높다는 사실을 아울러 눈여겨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가 범죄를 일으키는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특정 장애 자체가 범죄를 유발하는 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만한 연구결과는 없다. 예를 들어 자폐증이 범죄를 유발한다는 의학적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또 하나의 미신은 정신질환이 귀신 또는 마귀의 작용이라고 믿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믿음 좋고 기도 많이 하고 큰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이런 미신을 많이 신봉하고 있어 씁쓸하다. 물론 귀신이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 기도로 귀신을 쫓아내 낫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정신질환의 대부분은 귀신과는 무관하다.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마음이 답답했다. 장례식장에서 몇몇 분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들의 발작은 분명 마귀의 장난으로 부모가 금식기도를 하고 귀신을 쫓았더라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정신질환 때문에 아버지를 향하여 칼부림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런 일이 마귀의 일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미워하고 욕하고, 욕심을 내고 정욕을 품는 일도 마귀의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귀를 내쫓으면 정신질환이 낫는다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마귀를 내쫓으면 감기도 낫고 거짓말도 그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변을 당하면서도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아버지 목사님은 아들의 정신질환을 지고 골고다 십자가까지 갔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들에게 미칠 화를 막기 위해 스스로 응급처치를 하다 출혈이 너무 심해 서서히 죽어간 아버지. 그는 정녕 아들을 자신의 몸과 바꿀 만큼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였고, 그 아들의 아픔과 질병을 짊어지고 가신 희생의 아버지였다.

정신질환의 발병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요즘은 경제적 위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 가족의 정신건강을 위해 자신의 짐을 겸손히 주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동시에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을 섣불리 입에 올리는 일은 독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통받는 가족들에게 “금식기도해 보세요. 정신병 귀신이 떠나갈 것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전, 나의 신앙적 오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받는지 알고 회개했으면 좋겠다.

김홍덕/(목사·조이장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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