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독사의 알’ 을 품은 세대

2009-03-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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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해 몇 교회의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두 시골교회였는데, 시골은 더 이상의 시골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불편하던 그 시절들은 옛날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사라져버렸고, 한국은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몇 십년 만에 조국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게 신기하고도 놀라울 뿐입니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과 인습과 무지에 찌들어 있던 나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땅 끝’이 이제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근대화에는 교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기독교가 들어와서 교육과 평등, 그리고 사랑의 씨앗을 심어놓은 덕분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사회를 들끓게 한 핫뉴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강호순’이라는 사람이 경기도에서 무려 8명의 부녀자들을 죽인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무 죄책감 없이 너무나 지능적이고 완벽하게 살인 그 자체를 즐긴 사이코패스였습니다. 살인자 강호순의 모습은 너무나도 완벽한 외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잘 생긴 강호순 안에는 무서운 악이 있었습니다. 풍요속의 정신적 빈곤이라는 부작용이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외모를 중시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기 위해 절대 중요한 것이 외모라고 합니다. 여자라면 성형수술은 필수고 그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의 기준을 철저하게 외모로 삼는 나라의 삶의 질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얼짱, 몸짱, 에스(S)라인….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듣도 보지도 못한 신조어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건강이 종교처럼 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건강교’의 신자들처럼 보입니다. 몸에 좋은 약, 몸에 좋은 운동, 그리고 몸에 좋은 식품들…. 건강에 관한 관심이 집착의 수준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외모를 중시하고 육체의 건강을 추구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내면과 정신은 사막처럼 황폐화되고 있었습니다. 강호순은 결국 이런 사회의 자연스런 반영입니다. 내면이 병들면 상처나 독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쓴 뿌리가 나서 사람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한국사회는 ‘독사의 알’을 품은 시대(이사야 59:5)를 맞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속담을 인용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으면 자녀의 이빨이 시다”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강호순 같은 살인자들도 결국은 그의 내면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온 쓴뿌리 중 하나입니다. 강호순은 어릴 적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주 구타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났고, 이것은 성년이 되어 부인을 폭행하고 기르던 개를 목매달거나 굶겨 죽임으로써 살상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소위 ‘사이코패스’로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부모나 교회 혹은 사회 등 그에게 영향력을 주어야 할 어떤 권위가 ‘신포도’로 전락함으로 인해 강호순의 이빨이 시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풍요와 기회의 나라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정신없이 사는 우리 이민자들의 내면에도 영적, 정신적 건강이 너무나 방치되고 있습니다. 한인 가정 역시 관계가 점점 붕괴되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교회는 숫자와 헌금, 건물을 건강으로 삼는 허상과 허수와 허세를 버리고 진정 한 사람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 힘쓰고 서로 협력하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빨이 시게 되면서 우리 이민사회도 점점 ‘독사의 알’을 품고 사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강호순 같은 인물이 살인의 추억(?)을 감히 즐기지 못하도록 해야 할 책임은 결국 이민교회와 우리 이민자들입니다.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이사야 59:5).

김병호
(횃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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