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찜질방에서

2009-02-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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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다녀온 친구들이 찜질방이라는 데가 그렇게 좋더라고 입을 모았다.

뭐라고? 여자, 남자가 같이 들어간다고? 한국에 가본 지가 오래된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친구들이 덧붙인다. 아주 재미있지. 친척들이 한데 만나서 가족 모임도 하고 친구들끼리도 같이 가서 종일 동창회를 하는 거야. 여기도 비슷한 게 생겼는데 같이 가보겠나?

글쎄… 하는 나를 끌고 몇몇 친구들이 찜질방으로 향했다. 과연 남자와 여자가 같은 문으로 들어갔다가 옷만 갈아입고 다시 휴게실이라는 ‘공동 휴식구역’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광장이라고 불릴 만한 휴게실에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똑같은 가운을 입고 이리저리 누워 있다.

남자들이 엎드려 만화책을 본다. 재미있는 모양이다. 손가락에 침칠을 해가며 페이지를 넘긴다. 아주머니들 한 팀은 매트 같은 것을 깔고 화투를 치는데 오가는 용어가 살벌했다. 다 쓸어버려! 피박! 확 흔들라니까! 이 무서운 팀을 멀리 돌아 이번에는 각종 찜질방을 들러본다. 범수야, 불가마 한 번 가봐! 친구에게 등을 밀려들어선 곳에는 사우나의 고수들이 어두컴컴한 방 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었다.


엉거주춤. 바로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내 가운 한 자락을 잡아당기며 자기 옆자리를 가리킨다. 첨 오셨수? 아주머니가 묻는다. 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내 쪽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근데 말이유, 아저씨는 예수 믿어요?

나는 이 날 두 분의 막무가내 여자 권사님에게 붙잡혀서 온몸이 익을 때까지 ‘고문’을 겪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일찌감치 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나를 놓고 사영리 전도를 시작했다. 아저씨가 오늘 밤에 죽는다면 천당에 들어갈 자신이 있어요? 한 사람이 묻는 동안 또 한 사람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내 귀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분노한 토마토 같이 익어버린 내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것을 보더니 한 권사님이 일단 나가자고 말했다. 나는 문 밖으로 뛰쳐나와 마음껏 심호흡을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남자 사우나로 뛰어갔다. 다시는 저 공동휴식 구역 안에 들어가지 않으리. 무서운 아주머니들… 샤워나 하고 어서 집으로 가리라.

다짐을 했으나 앗, 아까 휴게실에서 읽으려고 들고 갔다가 두고 온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시암쌍둥이 분리수술로 유명해진 크리스천 신경외과의 벤 카슨의 신간 ‘위험을 감수하라’이다. 어쩌나? 나는 할 수 없이 남성 사우나에서 휴게실로 나가는 문을 살짝 열었다. 아까 그 분들이 있으면 차라리 책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휴게실 한복판에서 극성 권사님 두 분이 다른 여자들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일단 책 둔 방향으로 눈에 안 띄게 걸어가며 내용을 엿들었다. 이거 봐요, 여긴 내가 맡은 자리란 말야. 권사님이 젊은 여자에게 소리를 치다가 저쪽 다른 찜질방에서 나오는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얼른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장로니임! 권사니임! 일루 와요! 여기가 텔리비전 젤 잘 보여!”

나는 얼른 책을 집어 들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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