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스크바, 벨기에’ (Moscow, Belgium)

2009-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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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부와 두 착한남자 갈팡질팡 삼각관계

★★★½(5개 만점)


서민동네 배경 가슴 훈훈해지는 드라마

벨기에의 겐트라는 도시의 서민층이 사는 동네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아담하고 희망적이며 또 삼삼하게 매력적인 드라메디로 드라마와 웃음과 위트와 감정이 고루 잘 배합된 소품이다. 세 아이를 둔 한물간 주부와 둘 다 일종의 인생 실패자들인 착한 남자들과의 삼각관계를 아주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또 사실적으로 묘사해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영화는 처음에 후줄근한 차림에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은 마티(바바라 사라피안)가 두 남매를 데리고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우체국 직원으로 나이 43세인 마티는 자기가 사랑하는 미술선생인 남편 베르너(요한 힐덴버그)가 최근 젊은 제자와 살기 위해 가족을 버린 뒤로 남자는 아예 포기한 상태다.

그런데 마티가 차에 물건들을 실은 뒤 직진을 한다는 것이 그만 후진을 하는 바람에 뒤에 있던 대형 트럭과 부딪히는 경미한 사고를 낸다. 트럭에서 내려온 남자가 알콜중독자 출신으로 매사에 조심성 있는 29세의 금발의 조니(유루겐 델라엣).

둘이 말싸움을 시작하는데 조니가 입이 걸고 기지가 넘치는 마티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리고 조니는 단숨에 마티에게 반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마티에게 수작을 건다. 이것이 별로 싫지 않은 마티.

마티는 서민아파트에서 세 아이와 사는데 아이들이 하나 같이 특색이 있다. 고교생인 장녀 베라(아네모네 발케)는 레즈비언이며 둘째 딸 핀(소피아 페리)은 카드 점치는 것이 취미이고 막내 어린 아들 페터(율리안 보르사니)는 완전히 애어른이다.

그런데 사고가 난 다음날 조니가 마티의 고장난 차 트렁크를 고쳐 주겠다며 나타난다. 그리고 조니는 마티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래서 둘간에 관계가 시작되는데 마티는 점점 이 자유롭고 솔직하며 서민적인 조니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되면서 ‘메이-디셈버 로맨스’가 꽃 핀다. 아이들도 대체적으로 자기들에게 잘해 주는 상냥한 조니를 환영한다.

그런데 이 때 철이 덜 난 어른인 베르너가 마티 앞에 다시 나타나 제자가 너무 섹스를 좋아해 피곤하다면서 당신과의 평화롭던 삶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충격을 받는 것은 마티뿐 아니라 모처럼 참 사랑을 발견했다고 기뻐하던 조니. 그리고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티가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삼각관계가 재미있게 엮어진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평소 마티를 자기의 모나 리사라고 부르던 조니가 트럭운전사들 바에서 냇 킹 코울의 노래로 유명한 ‘모나 리사’를 부르면서 자기의 간절한 사랑을 호소하는 모습이 우습고도 애처롭다. 이와 함께 마티와 우체국 손님들과의 관계 묘사도 재미있다.


얘기의 대부분은 마티의 아파트에서 일어나 일종의 안방 드라마를 보는 기분.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배우들의 연기. 사라피안과 델라엣이 차분하고 절제된 연기로 좋은 콤비를 이루고 세 아이들 역의 배우들도 매우 정감 있는 연기를 한다. 크리스토프 반 롬파에이 감독. 26일까지 뉴아트 극장(310-28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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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왼쪽)와 조니가 접촉사고로 입씨름을 하고 있다.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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