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온통 바위·선인장… 15개 봉우리 넘어 정상에

2009-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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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바위·선인장… 15개 봉우리 넘어 정상에

정상에 레지스트리가 돌무더기 깡통 안에 들어 있다.

온통 바위·선인장… 15개 봉우리 넘어 정상에

바위와 선인장이 난무해 험난한 안자 보레고 주립공원의 빌라저 픽 등산로.

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

<17> 빌라저 픽 안자 보레고 주립공원
(Villager Peak, Anza Borrego State Park)


■ Villager Peak, Anza Borrego State Park


거리: 13마일
시간: 11시간
등반고도: 5,000피트


코첼라 평야와 솔튼시(Salton Sea)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있는 빌라저 픽(Villager Peak, 5,756피트)은 샌타로사(Santa Rosa) 산맥을 대표하는 고봉이지만 사막성 기후로 인해 눈이나 비가 거의 없는 곳이다. 트레일 시작 포인트(trailhead)가 있는 곳은 안자 보레고 주립공원(Anza Borrego State Park)이지만 공원 측에서는 관리를 하지 않는 곳이기에 그 어디에고 안내판이나 이정표를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는 트레일 지도(trail map)에도 표시가 없다. 오래 전부터 산양이 지나간 길 혹은 인디언이 다니던 길을 등산객들이 다니면서 등산로가 만들어졌다.

금요일 오후 4시에 풀러튼을 출발하여 10 Fwy-86 S-S 22를 따라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되었다. 초행길이어서 확실한 입구를 찾고 싶었지만 칠흑 같이 어두운 산자락이어서 일단 근처의 캠핑장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S 22 길옆의 Arroyo Salado 캠프장은 아무른 시설이 없는 프리미티브 캠프사이트(Primitive Campsite)였으나 분위기는 매우 조용했다.

4인용 텐트를 치고 불을 밝히고 저녁으로 준비한 불고기를 막 굽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막여우가 한 마리 나타났다. 쭈뼛쭈뼛 하면서도 주위를 맴도는 걸 봐서 이곳 캠프장을 주 무대로 생활하는 놈 같았다. 동반한 선배가 여우의 눈매가 너무 예쁘다고 하기에 자세히 보니 치와와만큼이나 큰 눈매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고기 냄새를 맡고 떠나지 않는 걸 봐서 애처롭기도 하지만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금지 되어 있다. 한동안 우리끼리 먹고 얘기를 하는 동안 쥐방울 드나들듯이 이곳저곳을 헤매는 것이 차마 안타까워 고기 한 점을 주니 너무 맛있게 먹는다.

다음날 아침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우리가 가야 할 산맥이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큰 산맥이 두 곳이어서 어느 쪽으로 올라가는지 모르지만 가다 보면 길이 나타나겠지. 언뜻 보아 그다지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더 높은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면 오늘 의외로 쉽게 산행하는 것 아닌가?

초행길에 흔히 범하는 실수는 겉으로만 보고 산행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려 15개가 넘는 봉우리를 넘고 넘어 실망과 희망을 거듭하고 난 후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후에야 내려왔는데 13마일, 5,000피트 등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새삼 깨달게 된다.


길은 바위투성이였고 등산로는 매우 희미했다. 그나마 곳곳에 돌무더기를 쌓아 표식을 해 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이나 남가주 사막에서 자주 보는 오코티요(Ocotillo), 초야(Cholla), 유카(Yucca) 선인장들이 사막의 정원을 만들어보려는 듯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기에 좋았던 선인장이 짧은 바지를 입고 있던 동반 회원에게 맛을 보여주려는 듯 종아리를 파고들어 피를 보게 한다.

올라가는 동안 몇 번 휴식을 취했는데, 공기는 맑고 더 넓은 광야에 등산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약 2시간 지난 후 수천 피트 아래로 떨어지는 클락 밸리(Clark Valley)가 눈에 들어온다. 산행로가 절벽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매우 위험해 보인다.

계속하여 봉우리를 넘고 넘으니 조그마한 봉우리가 또 기다리고 있다. 결국은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는데 정상 레지스터(register)가 없다. 책에서 읽은 대로 가짜 정상(fake summit)에 온 것이었고 약 30분 거리에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또 하나 서있다. 열심히 달려 도착하니 정상 표식 돌무더기와 함께 레지스트리(registry)가 있다. 안에는 각종 명함과 수첩에 빼곡히 다녀간 글이 적혀 있다.


가는 길

LA에서 10 Fwy-86 S- 22 S로 운전하여 High- way Mark 32mile 지점에 call box와 함께 ‘Pack-in, Pack-out’ 사인이 있는 곳에 주차를 하고 곧장 걸어 들어가면 된다. 곧바로 사람들이 지나다닌 발자국을 볼 수 있는데 산기슭 까지는 약 1마일 정도 걸어야 한다. 앞에 2개의 거대한 산맥이 있는데 등산로는 왼편 산으로 올라간다. 등산로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은 산 능선을 따라 가도록 한다.

<자료제공: 김인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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