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삶은 조각 시간의 바느질

2009-0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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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씨에게,

여기는 수요일 아침입니다. 지금 시간은 동부에 비해 3시간 늦은 오전 6시30분. 잘 자고 일어난 아침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 아들 뒷바라지 등 주부로서의 일들, 그리고 남편의 비즈니스를 틈틈이 도와야 하는 삶이 너무 바쁘고 고달프다는, 그래서 책 한 페이지 똑똑히 읽을 수가 없다는 정원씨의 메일을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민살이를 꾸려가는 40대 주부의 고된 삶이 엿보였습니다.

지금은 은퇴하고 지내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란 것은 바다처럼 무량하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마치 아주 굴곡이 심한 산곡을 스미듯이 흐르는 가느다란 실개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실개천에서는 그 물에 세수 한번 하기도 힘이 들지요. 손바닥을 모아서 물을 소중하게 받아야 겨우 얼굴에 물칠을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모아서 식용수로 쓰고, 빨래를 하고, 목욕까지 하기에는 여간 감질나지 않는 실개천의 물! 그게 시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시간답게 붙잡아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 하찮은 자투리 시간들을 무심코 보내다 보면 아무런 성취 없이 하루가 가고, 일년이 가고, 한 생애가 갑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일지라도 어떤 사람들 그 시간에 뭔가를 이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내하면서 그 자투리 시간을 모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냅니다. 읽을 만한 책을 저술하기도 하고,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내는가 하면, 학위를 받아내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넉넉한 시간이 주어져서 그런 성취를 이루어 내는 게 아니고, 그 자투리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고 모아서 쓸모 있게 사용한 결과들입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마치 조각 천으로 이불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전후의 가난했던 이웃 누나들이 손바닥보다 못한 작은 조각 천을 모아서 바느질로 이어 붙여 손수 이불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햐! 저걸 언제 다 잇겠누?” 하고 저는 그 누나들을 답답하고 한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누나는 손쉽고 단순한 패턴이 아닌 복잡한 무늬와 장식을 넣은 멋진 이불을 완성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최근에야 철이 들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게 자투리 조각 천으로 이불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질나게 실개천처럼 주어지는 시간, 그 조각 천 같은 시간들…. 시간이란 본래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이란 그 조각 시간으로 직조하여 내는 내 고유의 작품이었습니다.

정원씨! 오랜만에 쓰는 메일에 잔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늘 바쁘다 하면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제 자신의 생애가 못내 아쉬워서 자신에게 투덜거려 보는 푸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원씨처럼 아직은 삶의 시간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픈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바빠도 정원씨에게는 뭔가를 성취하실 수 있는 시간들이 아직 더 있을 것입니다. 저녁식사 후 TV 앞에서 소비하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나가서 자기가 원하는 전문분야의 야간강의를 듣는다든가, 아니면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책을 읽어 나간다든가, 아니면 가까운 운동 장소에 나가 풀어지는 몸을 가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정체를 잘 알고 쓸모 있게 사용하는 사람만이 석양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지금 동부는 한창 활동하는 시간이겠군요. 좋은 하루, 알찬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송순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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