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체’(Che)

2009-01-16 (금)
크게 작게

▶ 풍운의 혁명가 ‘체’게바라

★★★(5개 만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4시간18분짜리 대하극


아르헨티나 태생의 의사요 혁명가로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주도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전기 영화로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한 4시간18분짜리 대하 드라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야심만만한 영화는 상영시간만 대하적이지 깊이나 열정 그리고 긴박감이나 지적 철학적 무게가 결여된 보통 영화로 끝났다.


역사에 관심 있는 팬들은 그런대로 흥미 있게 볼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1, 2부로 나뉘어 상영되는 이 영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소더버그는 혁명가와 혁명영화를 마치 외과의가 수술을 하듯 너무 세밀하게 해부, 혁명의 임상강의를 듣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클라이맥스를 피한 반드라마처럼 보인다.

서술방식뿐 아니라 카리스마가 있는 열정적 혁명꾼인 체의 묘사도 매우 평범하고 무사안일 스타일. 연기파 베네시오 델 토로가 연기하는 체는 에너지와 역동감이 결여된 길가다 앉아 쉬는 노인 같기도 하고 총사령관이라기보다 졸병처럼 그려졌다. 대사는 거의 스페인어.

제1부는 시간과 장소가 마구 교차되며 1955년 체가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카스트로를 만나 혁명을 논의하고 쿠바에서의 오랜 전투 끝에 혁명군이 하바나로 진주하기까지를 그렸다.

인터뷰와 해설을 통해 체 등의 정치적 배경이 설명되는데 1956년 체와 카스트로는 80여명의 혁명군을 이끌고 쿠바에 상륙한다(시간대를 뛰어 넘으며 1964년 체가 유엔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흑백으로 묘사된다).

조각들을 깁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1부에서 체와 카스트로와 혁명군들은 미국과 마피아의 지원을 받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대통령이 있는 하바나를 향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군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마침내 공산혁명이 성공한다.

제2부는 1966년 카스트로에 의해 총사령관에 임명되고 쿠바 시민이 된 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남미에 공산혁명을 확산시키기 위해 볼리비아에 잠입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여기서 체가 혁명에 실패해 몰락하고 결국 정부군에 체포돼 총살당하기까지의 역사가 소개된다.

그런데 제2부는 체가 혁명군에 자원한 지역 농민들에게 전투와 전략을 지도하는 부분에 너무나 많이 할애해 논산훈련소 훈병시절이 생각날 지경이다. 가급적 사실에 충실하려고 한 소더버그의 의도는 가상하나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김이 빠져 혁명 교본을 보는 셈이다.


전투 장면 역시 도표를 그리듯 또 생체를 해부하듯 묘사, 긴장감이나 서스펜스가 전연 결여됐다. 델 토로는 그런대로 호연을 하나 너무 탈진한 상태로 체를 묘사, 체의 카리스마와 혁명 일기를 느끼기가 힘들다. 성인용. 선셋5(323-848-3500), 랜드마크(310-281-8233), 타운센터5(818-981-9811).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HSPACE=5
혁명가 체역의 베네시오 델 토로(오른쪽)가 시가전을 치르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