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쌀쌀하고 쓸쓸할 때 더 간절한 ‘엄마 손맛’ 밥상

2008-12-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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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이 눈물겹게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명절이라곤 하지만 고향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알뜰살뜰
설 음식 챙겨 먹는 이들이 어디 그리 많겠는가. 명절 상이란
모름지기 식구들 많고, 문지방 넘나드는 일가 피붙이들도
한 둘은 있어야 챙기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덩그마니
혼자 사는 유학생들이나 부모형제 한국에 있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타국 땅에서 달랑 혼자 먹자고, 부부 둘이 먹자고 설상 챙기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렇게 세밑이면 엄마가 끓여주는 떡국 한 그릇, 따뜻한 저녁 밥상이 새록새록 눈에 밟히는 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 하얀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잡곡밥에 한입 베물면 사각사각 새벽 눈 밟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김장 김치, 살얼음 살짝 얹힌 아삭아삭한 동치미, 거기에 노릇노릇한 고등어 자반 한 손만 올라와도 하루내 피로가 눈 녹듯이 사그라드니까. 그게 어디 보통 밥상이던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일진대 밥상머리에 앉는 순간, 시린 허기는 사라지고 고단한 마음 저 안쪽까지 온기가 모락모락 차오른다.

한인타운에서도 엄마 손맛으로 유명한 한식당 ‘성북동’ 손영희(55) 사장이 그 엄마표 밥상을 위해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실 그녀는 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젊은 고객들 사이에선 그냥 ‘엄마’로 불린다. 단골들 모두 그 ‘밥집’을 찾는 이유가 엄마 밥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고 하니 왜 아니겠는가. 그녀가 소개하는, 어렵지 않으면서 초보 주부들도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엄마 손길 곳곳에서 녹아나는 따뜻한 ‘엄마표 밥상’을 살짝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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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성북동’손영희 사장이 손수 차린 엄마표 겨울별미 밥상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손씨는 겨울별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차리는 엄마의 정성이 맛을 좌우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겨울 별미, 참 아름다운 밥상

손영희씨와 음식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시장하지도 않은데 목 울대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기차 화통보다 더 크게 들린다.

이렇게 음식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맛깔스런 그이의 음식 솜씨는 친정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건너, 건너온 우리 음식의 깊이는 먹어 본 이들 만이 안다. 대를 이어온 시간의 깊이만큼 진중하고 알찬 그 맛 말이다.

“어렸을 적 먹을 것 귀하던 시절 최고의 겨울 별미는 갱식이였죠. 김장김치 그 자체가 한 겨울 별미 아니겠어요? 적어도 6개월 이상 숙성된 김치를 멸치국물에 넣고 밥과 가래 떡 넣어 후루룩 한 그릇 말아먹으면 한겨울 추위도 너끈히 이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더니 어느새 그녀의 겨울 별미는 갱식이를 넘어 무국에서 닭찜을 지난 뒤 우엉 고기산적을 돌아 조기구이로 빠져 나왔다. 듣고 있노라니 그녀의 겨울 밥상 위 음식 기행은 듣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했다. 어디 이뿐인가. 손 사장 집에 가보면 지금도 크고 작은 장 단지만도 마흔 개에 이른다고 한다.

“요즘 인스턴트 음식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시간을 쌓아온 장류와 김치 맛을 흉내낼 순 없죠. 그래서인지 빨리 만든 음식보다는 천천히 익히고 곰삭은 음식들이 전 좋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겨울 내 허해진 식구들에게도 영양 면에서도 발효식품 식단은 단연 최고입니다.”


이런 그녀의 슬로 푸드(slow foods) 예찬은 서울에선 겨울이 되면 경동시장에서 곰삭은 단풍 깻잎을 사다 된장 사이에 켜켜이 껴넣은 뒤 별미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겨울엔 바짝 마른 굴비를 고추장에 박아 굴비 장아찌 만들어 먹는 예사롭지 않은(?) 요리 솜씨로 나타났다.

참 아름다운 밥상이다. 엄마 정성 듬뿍 담긴 정갈한 밥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배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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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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