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희망을 이야기합시다

2008-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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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워싱턴 주에는 지난 12월 중순부터 이상한파와 함께 폭설이 내렸습니다.

겨울철 눈에 익숙한 동북부 지역이나 중부 시카고 지역의 분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겨울에도 비가 오기로 유명한 이곳 시애틀 지역에 일주일이 넘도록 20인치가 넘는 눈이 온다는 것은 폭설에 익숙하지 않은 워싱턴주 전체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처음 눈이 올 때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좋아했으나, 하루, 이틀, 일주일 계속 눈이 오면서 들뜬 기분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그 아름다워 보이던 눈이 지긋 지긋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쌓인 눈으로 곳곳의 도로가 통제되고, 학교는 아예 문을 닫고 이른 겨울방학에 들어가 버렸으며, 성탄절 특수를 노리던 샤핑몰마저도 문을 닫기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이곳저곳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을 나섰던 차량들의 사고 소식들이 잇달아 들려오면서부터는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매일 기상 뉴스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눈이 멎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유난히 언덕이 많은 지형 탓에 유일하게 철없는 어린아이들만 “이게 웬 떡, 아니 웬 눈이냐!” 하면서 하루 종일 눈썰매를 타며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근 열흘을 혼돈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행히도 성탄절 전날 눈이 멎고, 주 정부에서 제설차량을 동원하여 도로의 눈을 제거한 관계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아침,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뒷마당에 그렇게 소담히 쌓여 있던 눈이 다 녹아버리고 축축한 맨 잔디가 을씨년스럽게 드러난 것을 보며 아쉬워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편해진 그 며칠 사이에 힘들었던 폭설의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어느덧 2008년이 다 저물어 갑니다. 즐거웠던 일보다는 유난히 힘들었던 일이 많은 한 해로 기억 속에 남을 시간인 것 같습니다. 특히 경제 위기로 인해 가정마다, 사업마다 걱정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회계사무실을 운영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 한인 비즈니스의 매출액 감소의 폭이 상당하고, 심지어는 문을 닫는 곳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 주식가 하락, 환율 상승 등으로 인해 앉아서 손해를 본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 힘들었던 한 해를 달력 저편 과거로 넘기고 2009년을 맞이하려 합니다.

분명한 것은 2009년의 어느 시점에서 2008년을 돌아보면 힘들었던 일보다는 즐거웠던 일이 추억으로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눈 녹은 뒷마당을 보면서 폭설의 악몽을 잊고 아쉬워하는 저처럼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사하신 ‘추억의 미학’입니다.

이제 희망을 이야기 할 때입니다. 김광규 시인은 그의 시 ‘희망’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분명히 희망은 우리 편에 서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틀 남은 2008년을 조용히 정리하며 다가올 2009년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싹 같이 푸릇푸릇한 새 희망을 만날 기대를 품고 말입니다.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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