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라루 선장의 고백

2008-12-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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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다. 평양에서 피난을 내려오신 부모님은 날마다 고향을 그리셨다. “야야, 범수야, 전쟁 나던 그해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간? 넌 고생을 모르디?” 그렇다. 나는 한겨울 피난길이 얼마나 고된 삶과 죽음의 기로였는지, 잔인한 전쟁은 오늘과 내일을 부정하면서 동족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 갔다는 사실을 몰랐다.

얼마 전 오셨던 노인 환자 A씨는 그 유명한 메레디스 빅토리호 덕분에 피난길 목숨을 건지신 분이다. 1950년 겨울, 크리스마스 전전날의 이야기다. 전쟁은 날마다 많은 사상자를 냈고 남북은 포화로 얼룩져 갔다. 여기에 중공군이 개입하자 전세는 점점 우리에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한국군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갈 데 없는 피난민이 몰려들어 함경도 흥남부두는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이때 미국 화물선 빅토리호의 젊은 선장이 앞으로 나섰다. “화물을 모두 버리고 대신 피난민을 실어라!” 중공군에 붙들리면 전쟁 포로가 될 판이던 사람들이 화물선에 앞다투어 오르기 시작했다. 꽁꽁 언 날씨, 눈발이 흩날리던 부두에 아이를 안고 업은 어른들, 병 든 노인과 임산부 등 무려 1만4,000명의 피난민이 갑판과 화물칸에 빼곡하게 들어찼다. 음식은 커녕 마실 물도, 구명 장비도 없는 화물선, 그러나 선장은 다시 소리쳤다.


“그 분이 계신다! 불가능은 없다! 어서 남쪽으로 항해하라!” 기뢰를 뚫고 기적적으로 탈출한 빅토리호는 마침내 3일 뒤 거제도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환자 A씨는 그 당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고 기억했는데 이는 나중에 양국 정부 기록에서 모두 확인된 사실이다.

구출 작전에 성공, 피난민을 모두 살려낸 휴머니즘의 영웅, 레너드 라루 선장은 3년 뒤, 휴전 협정이 맺어져 포화가 그치자 미국으로 돌아가 천주교 성베네딕트 수도원의 신부가 되었다.

나중에 한국 정부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려고 불렀을 때 그는 조용히 제안을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다. 라루 신부는 가장 좋아하는 말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를 실천한 것이다. 이 분은 순종과 청빈의 삶을 살다가 2001년 뉴저지의 세인트 폴 수도원에서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한다.

라루 선장이 남긴 신앙 고백은 언제나 내 가슴을 울린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로맨스요,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은 최고의 모험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성취이다.”

나 역시 하나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하이라이트이다. 하나님을 만난 감격은 내 인생의 지축을 흔들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나의 눈과 귀를 잠시 간질이다가 사라지지만 하늘이 주는 기쁨은 내 영혼을 충만하게 한다.

일년 동안 가장 많이 사람들을 만나는 시즌이다. 크고 작은 연말 모임과 한국에서 오가는 손님들…. 어떤 만남은 피로함만 더하고 어떤 만남은 새로운 기대와 도전을 가져다 준다. 의미 없는 모임을 줄이고 대신 하나님을 추구하는 최고의 모험가들과 더 많은 삶을 나누고 싶다. 새해 달력을 펼치고 함께 비전을 설계하고 싶다. 라루 선장의 고백처럼 최고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어깨동무 하며 2009년을 함께 가고 싶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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