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멀쩡한 장애자

2008-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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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시시피에서 장애문제를 가지고 끙끙대며 공부할 때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러 오신 한 목사님 가정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름이 장OO 목사님이었고 사모님 이름이 김애자 사모님이었습니다. 굳이 사모님의 이름을 밝히는 이유는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오면 아내들은 남편의 성을 싫든 좋든 간에 따라야 하는 고로 장 목사님 사모님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사모님이 미국 학교에 같이 공부하려고 등록을 하고 이름이 “애자 장”으로 바뀐 직후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 학생회에서 주소록을 만들면서 한국식으로 이름을 적어 넣은 주소록을 보고는 사모님은 얼굴이 완전히 찡그러졌습니다. 이름이 ‘장애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멀쩡한 장애자가 된 것이지요. 제가 옆에서 ‘멀쩡한 장애자’라고 많이 놀려댔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가운데는 사회적으로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일반인보다도 더 열심히 더 적극적으로 사시는 분이 많습니다. 반면에 신체적으로는 멀쩡한 사람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적응을 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역기능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멀쩡한 장애자’라 칭하고 싶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해도 실제적으로는 장애자란 뜻이지요.


장애를 정의할 때 처음에는 신체적인 장애만을 장애로 규정했었습니다. 즉, 신체적인 장애(impairment)는 기능적인 장애(disability)를 수반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불이익(handicap)을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하는 장애개념이 1980년에 WHO가 마련한 장애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의에 의하면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가 기능적인 문제를 낳고 사회적인 불이익을 가져온다고 장애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은 두 팔을 써야 하는 일을 하는 곳에서는 기능상 장애를 나타내며 그렇게 때문에 취업에 제약이 있고 사회적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WHO가 2000년에 개정판을 내놓았습니다. ICIDH-2로 명명된 개정판 장애의 정의에 따르면 장애에 대한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점을 명백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자기가 스스로 사회에 참여하기 싫어서 받는 불이익이라면 자신의 책임이지만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들을 받아 들일만한 제반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아 장애인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이제는 그를 수용하지 못한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장애인들의 삶에 사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아울러 몸은 멀쩡한데 사회적인 순기능에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큰 장애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고 손발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 자’라고 장애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멀쩡한 장애인이 아닌지 한번 살펴볼 때입니다. 신체 기관이 다 붙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 기능을 다 해야 비로소 사람 구실하듯 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다해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요즘은 멀쩡한 장애인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겉은 멀쩡한 것 같은데 속은 썩어 있고 신체기관은 정상 같은데 생각이나 행동은 비정상인 사람은 분명 멀쩡한 장애인입니다. 더 나아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장애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 홍 덕
(목사·조이장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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