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다시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

2008-12-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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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돈 버는 것뿐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자신의 점원을 밤늦게까지 근무시키고, 하나 뿐인 조카의 크리스마스 식사 초대도 거절합니다. 친구도 없고, 특별한 취미도 없습니다. 몰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이나, 불행은 더욱 관심 밖의 일입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그에게 한때 동업자였지만, 먼저 세상을 떴던 친구를 비롯하여 3명의 유령이 찾아옵니다. 그들에게 이끌려, 가난하지만, 순박했던 과거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 인색하고, 배려 없는 현재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극의 연옥 속에서 온 몸을 쇠사슬로 칭칭 감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미래의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비몽사몽 속에서 차례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동안의 삶을 철저하게 참회하기에 이릅니다. 그에게 주어진 그날 밤의 깨달음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게 되고, 그 날 이후, 그는 자비를 베푸는 참사람으로서 남은 일생을 살게 됩니다.’

어린 시절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찰스 디킨즈 원작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찰스 디킨즈가 살았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는 대영제국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로서, 대외적으로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였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이루어진 산업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풍요로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풍요함과 산업화 과정에서의 물질 만능주의의 병폐도 발생하여, 공장에서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강요되고, 도시주변에는 실업자와 빈민들이 모여드는 슬럼가가 확대되었으며, 빈부의 격차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그런 사회적 현실이 찰스 디킨즈로 하여금 ‘스크루지 영감’이라는 주인공을 탄생시키고, 그가 인색한 수전노에서 자비를 베푸는 참사람으로 거듭나는 소설을 쓰도록 하였으며, 새 사람, 스크루지의 모습은 그가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찾고 싶었던 모습일 것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도 1주일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이하게도 우리가 사는 21세기가 스크루지가 살던 당시와 기이하게도 너무나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극에 달한 경제적 성취, 넘치는 풍요, 그러나 그것은 몇 몇 잘사는 나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끼니에 100달러 이상의 거금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 1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깝게는 우리가 사는 이웃, 멀리는 지구촌 곳곳에 너무나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변하기 전의 ‘스크루지 영감’과 닮아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의 캐롤은 거리를 들뜨게 합니다. 우리는 비록 예년보다는 여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갑을 열어 소중한 사람들의 선물을 사기 위해 이곳저곳 크리스마스 장식이 휘황찬란한 샤핑몰을 찾습니다. 아마 선물을 받고 환호할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시면서 벌써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소중한 사람들 명단에 어려움 속에 고통 받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을 올리고, 그들에게 아주 작은, 그러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제공한다면 이번 크리스마스는 유달리 따뜻하고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2008년의 겨울, 우리가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완전히 달라진 스크루지 영감의 그 흥겨움과 감사함이 닮긴 ‘다시 부르는 캐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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