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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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차이

콩나물, 두부, 계란, 파, 우유, 밀가루. 계산대 위에 척척 올려놓으며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이거 왜 이리 물가가 비싼 거지? LA보다 장난이 아니네. 허걱? 과일은 금값이네?’ 얼굴에 표정을 애써 참으며 장보기를 마쳤다. “여보, 마켓에서 몇 개 안 샀는데 10만원이 훌쩍 넘었어.” “몇 개 안 사긴. 많이 샀구먼.” “여기 생필품이랑 식품이 왜 이리 비싼 거야? 외식하는 게 더 싸게 들겠다.” “서울의 물가 높은 것이 세계적인 거 몰라?”

서울에선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어 있는 동안 뚜벅이로 생활을 한다. 장보는 날이면 낑낑거리며 들고 오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또 가슴이 새가슴이 된다. 초마다 100원씩 올라가는 것이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택시 값도 엄청나다.


택시비 비싼 것을 괜히 남편에게 성질을 부리며 “으~~이씨. 택시 값도 너무해~” “요즘 누가 장본 것을 들고 다니냐? 다 배달해 주는데 그걸 들고 왔어? 하여간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해주는데 왜 이리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 결국 남편에게 핀잔만 듣고 콩나물을 다듬고 있다.

서민들의 대표적인 음식 콩나물, 두부만 식탁에 올려도 4,000원! 10년 전 천원의 가치가 지금의 만원하고 맞먹는 것 같다. 만원짜리가 이리 힘이 없어지다니.

거의 1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30대 중반을 넘긴 아줌마들의 모습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에구. 민아 아줌마만 제일 늙었넹.’ 괜히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날씨를 핑계 대며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들을 대하고 있지만 왠지 마음은 서글퍼진다. 난 내년에 아들이 중학교를 가는데 아직도 친구들은 아이를 낳고 있다. 아들이 뭔지. 아직도 시댁에서 아들을 낳으라고 시달리는 친구들도 있다.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는데 밥값이 너무 비싸 메뉴판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얼마야? 여기 원래 비싼 집인가?’ 예전에 한국 살 때와 가격비교를 하니 아무것도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달러에 익숙한 내가 원화를 오래간만에 보니 금액이 더 커 보이는 것이 머리가 복잡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고.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예전의 천원, 이천원을 따질 것인가.

돈에 대한 개념을 바꾸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서울이 10년 만에 천지가 개벽한 듯 건물이며, 생활수준이며,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전부 변한 듯하다.

한주 두주 서울생활을 하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 비싼 것은 말로 할 수 없이 비싸고, 싼 것은 정말 너무 허접사리 싼 물건이 있고, 건물도 최첨단으로 새로 지어진 건물은 내 눈을 압도할 정도로 좋고, 오래된 건물은 흉물처럼 너무 초라하고, 사람도 전신성형을 했는지 너무 예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못 생겨서 다시 한번 보게 생긴 사람도 있다.

극과 극을 보는 듯 모든 것이 천지 차이로 좋은 것은 너무 좋아지고 나쁜 것은 너무 나빠지고, 편리한 것은 너무 편리해지고, 불편한 것은 너무 불편해지고. 중간지대가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점점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말이 내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반복하며 난 이곳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식사대접을 받는데 하루는 몇만원짜리 점심을, 또 하루는 몇천원짜리 점심. 내 몸도 천지 차이로 들어오는 음식으로 또 보는 것으로 혼란스러워 하겠지. 나도 이리 혼란스러운데 몸은 어쩔까?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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