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위대한 포기

2008-11-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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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즈 지방, 켈트 족의 신화들 중에는 가시나무새에 관한 전설이 있습니다.

이 가시나무새에 관한 신화는 그 동안 소설이나, 시, 노래,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로 쓰여, 너무나도 잘 알려짐으로써, 이제는 그 다양한 주제가 된 자체가, 바로 전설이 되어 버린 듯 합니다.

앤드류 마리라는 작가는 ‘마음에 뿌린 씨앗’이란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가시나무새를 이다지도 애절하고 아리하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지구상의 그 어떤 피조물보다 아름답게 우는 새에 관한 전설이 있다. 즉, 가시나무새의 전설이다. 그 새는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는 쉬지 않는다. 그러고는 거친 가지 사이에서 노래를 하며, 그지없이 길고 날카로운 가시로 제 몸을 찌른다.

이 새는 죽어가면서도 고통을 이기고 날아올라, 종다리나 나이팅게일 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그 곡조 최상의 노래가 희생의 대가이다. 최상의 것은 커다란 고통을 치르고야 살 수 있기에…”

우리들은 시인이나, 화가 등, 예술가들이 일생 동안 인고로 쌓아온 모든 것들을, 일시에 분출해낸 역작이나 최후의 유작을, 이 가시나무새의 노래로 곧잘 비유 합니다. 그것은 물론, 죽음을 앞둔 이 새의 노래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살을 저미는 고통과,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희생이 없이는, 예술이든 종교든, 삶이든, 그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결코, 최상의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무치는 교훈을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사일번(大死一番)! 크게 한번 죽으라는 뜻으로 쓰이는 선가의 용어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크게 한번 죽으라는 말은 크게 한번 버리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크게 한번 버리는 것을 ‘위대한 포기’라고도 합니다.

고타마 싯다르타(샤카무니 붓다의 속명) 태자께서는, 고통 속에 있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위해, 보장된 왕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가하셨습니다. 그것을 후세 불교인들은 ‘위대한 포기’라고 부릅니다.

크게 한번 죽으면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크게 한번 내가 죽을 때, 비로소 너와 나의 상대적 경계는 허물어지고, 세상을 바로 읽을 수 있는 지혜와 한없는 자비의 마음눈이 열리게 된다고 합니다.


근세 불세출의 대선사 성철 스님에게, 속가 제자인 모 유명 교수 한 분이 슬며시 딴죽을 겁니다. ‘스님, 스님들은 가족들 다 버리고 시주 받아 혼자 도 닦자고 산 속에…’ 언감생심, 이 분이 누구신가, 가야산 호랑이! 아차 싶어, 재까닥 말을 끊고 얼어붙은 옆 눈으로 스님의 심기를 살피는데, 스님의 눈길은 이미, 빳빳합니다. 겁을 먹고 외면하는 관자놀이를 가야산 호랑이의 일갈이 여지없이 후려칩니다. ‘야! 이 화상아! 네 놈은 언제 크게 한번 죽어나 봤나? 맨 날 소꿉장난이나 하면서 노닥거리는 인간이! 언제나 큰살림 한번 해볼꼬!’

큰 스님! 가야산 호랑이 산을 떠날 제, 그 궁극의 포효에, 하늘도 땅도 숨죽인 그날. 스님을 기리는 행렬로 가야골은 메어지고, 메어지고, 또 메어졌나니.

박 재 욱
(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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