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The best thing in the worst time

2008-11-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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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가을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던 어느 날, 마치 스산한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월드비전 메일 박스에 한 후원자님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마 제 평생 결코 이 편지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 오늘은 이 편지를 소개합니다.

“길 위를 뒹구는 낙엽을 보니 새삼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제 남편 이름으로 아동결연 후원을 해왔는데 다음 달부터는 제 이름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편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답답하게 사느니, 한국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달랑 옷가지 몇 벌을 챙겨들고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낮에는 식당에서, 저녁에는 사무실 청소를 하면서 ‘이렇게 살다보면 좋은 날이 있을 거야’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던 남편….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돈 문제로 이리 시달리고 저리 쫓기면서 말다툼하는 날이 점점 늘어가고, 결국 우리는 높고 깊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렇게 절망의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에서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었는데….
어느 날 저녁, 밤 청소를 마치고 돌아와 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TV를 보다가 탤런트 김혜자씨가 바짝 마른 아이를 품에 안고 ‘한 생명을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을 보고서는 숟가락을 놓지 못한 채, 한참 동안을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보던 남편의 젖은 눈이 지금도 제 기억에 선합니다.

그리고 제게 ‘우리도 한 아이 정도는 후원해야 되지 않겠니?’라고 물었을 때, 나는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그 때 가서 하자’고 했었지요.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남편은 몸이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 된다며, 큰 맘 먹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일과 돈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그런 병이 생긴 것이겠지요.

남편은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고 담담히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치료를 받을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죠.

대신, 남편은 TV에서 보았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병들어 죽는 것보다 굶어서 죽어가는 것이 더 큰 고통일 거야’라면서 아동 결연의 뜻을 다시 비쳤을 때, 저는 차마 ‘형편이 나아지면…’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의 아동결연 후원은 시작되었습니다.

몸은 썩어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남편, 사십을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큰 해 끼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변변히 이웃에게 도움된 것도 없지만, 그래도 굶고 있는 아프리카의 한 소녀와 먹을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고 담담히 말하던 남편….


비록 그이는 이 곳에 함께 있지 않지만, 제가 그 이를 대신해 아동 후원을 이어가려 합니다. 다음 달부터 제 남편의 이름을 빼주시고, 제 이름을 넣어 주세요.” -OO시에서, 후원자가.

월드비전 국제본부 5대 총재를 지냈던 그레엄 어바인 박사는 그의 회고록에서 의미 있는 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The best thing in the worst time…”

그 ‘최선의 일’이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의미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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