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이호성 장로님을 기억하며

2008-11-1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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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가을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아침 이슬 같다. 어느 날 멀리 바라보이는 로키산맥의 준봉들이 애스펜(포플라의 일종) 단풍으로 황금물결을 이루는가 싶더니 11월 중순에 들어선 오늘 아침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느덧 흰 눈이 산봉우리를 덮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 살면서 시간의 흐름이 참으로 빠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찬란한 여름이 지나가고 정결한 가을이 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수은주가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겨울이 다가온 것이다.

인생도 어찌 보면 사계절이 오고 가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이 푸릇푸릇하게 살아나고 정원의 꽃과 나무의 열매가 무성한 봄, 여름이 인생의 청춘과 같다면 성숙하고 완숙한 미를 발하는 가을은 인생의 장년기와 같고, 긴긴 밤의 적막과 고독, 추운 날씨 때문에 마음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겨울은 결국 인생의 노년기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사람이 순리대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결국 인생의 계절에 따라 자신을 잘 맞춰 가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이 코앞에 다가 왔는데 월동준비는 염두에도 없고 오히려 여름옷만 입고 설치다보면 영락없이 감기 몸살에 걸려 모진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오직 건강식품과 웰빙(well-being)에만 관심 갖고 잘 먹고 잘 살 궁리만 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계절 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될, 길지 않은 인생을 사는 동안 웰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웰다잉(well-dying)이다.

‘911 천국병원’의 저자이신 이호성 장로님이 지난 주 천국으로 들어가셨다. 10년 동안 침샘암이라는 희귀한 암과 모진 투병생활을 해오셨는데 드디어 육신의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부활의 새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이 장로님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2년 전쯤의 일이었다. 아직 50대 초반인 이 장로님은 어느 모로 보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침샘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암세포가 뇌로 전이될 경우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난 10년 동안 어쩌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겪게 하시면서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셨고, 친히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영서를 기록하게 하셨다. 그렇게 정리된 책이 바로 ‘911 천국병원’이었다.

“저는 사는 것에 대해 간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것에 대해서 간증하려는 것입니다. 죽으면 살 수 있다는 진리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진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 저는 사나 죽으나 관계없이 간증하고 또 간증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역설적인 설명과 이해는 이호성 장로님이 10년 동안 고난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확실하게 깨닫게 된 기독교의 핵심진리다. 그는 아직까지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어떻게 서든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사망의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은 죽은 소망 없는 불신 환자들에게 이 진리를 나눠주기 위해 주님 앞에 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호성 장로님은 53세의 길지 않은 인생을 마치면서 잘 준비된 죽음, 즉 웰다잉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신앙 유산 남기고 천국으로 입성하셨다.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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