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저울아, 고마워!

2008-11-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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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럼스럼 내리는 비가 단내 나던 아스팔트길을 적시더니 금세 찬바람이 굵어졌다. 동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가로수들이 단조로운 녹색빛 대신 노랑과 빨강 옷으로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젠 완연한 가을인가 보다. 나이에 상관없이 시인이 되게도 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날카로운 금테 안의 눈동자에도 넉넉한 눈빛을 선사하는 계절. 한해의 감사를 헤아려보는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기에 여섯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감사연습’의 행복을 기웃거려 본다.

희망으로 시작했던 2008년 한 해가 이제 두 달 남짓 남아있다. 지나온 열 달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감사를 찾다 보면, 시작부터 미소가 번져간다. 식구가 많기에 감사의 분량도 누룩 들어간 빵처럼 불어나니 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감사의 조건이 아닌가!

매달 나누는 ‘감사 연습’엔 모두 합해도 백가지가 조금 넘어갔는데. 11월에 하는 ‘감사 연습’엔 한 사람씩 ‘감사 100선’을 ‘행복 숙제’로 내주어서 누룩 감사가 천 단위를 넘어간다.


아직 감사를 나누려면 몇 주가 남아있지만 ‘감사 100선’을 찾는 일은 월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에 숙제하는 육남매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있다. 여섯 아이들이 저마다의 눈높이에서 찾아내는 감사의 동심원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커져만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과 고통까지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좋은 일엔 감사가 한 가지였는데, 아팠던 일엔 감사가 서너 가지로 늘어남을 경험하면서 감사의 근육에 힘줄이 붙고 볼륨이 생긴다.

아직 초등학생인 넷째 딸아이의 감사노트를 살짝 보았더니 저울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목욕탕에 있는 저울에게 감사해요. 동생보다 몸무게가 덜 나가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내 몸무게를 정확하게 알려준 저울 때문에 밥도 더 열심히 먹게 되었고, 이젠 거의 동생과 같은 숫자로 몸이 건강해져서 참 감사합니다… 저울아 고마워!”

사실 14개월, 32개월 차이로 연년생 동생을 둘씩이나 만났던 넷째 녀석이 늘 마음에 걸리곤 했었다. 첫돌이 되면서부터 엄마 품을 동생에게 양보했던 어른스런 딸아이. 아무런 투정도 없이 멀찌감치서 엄마와 동생을 배려하느라 그랬을까? 여섯 중 제일 몸이 가늘고 약골이었다. 모두가 지나가는 감기도 어김없이 거쳐갔던 넷째 딸아이를 품에 안고 몇 배의 건강기도를 쏟아 붓곤 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넷째의 감사고백이 부족한 엄마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늘어나지 않는 몸무게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오히려 정확한 숫자를 알려준 저울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니…. 밥만 먹으면 목욕탕으로 달려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에 황홀한 감사의 빛무늬가 영롱하게 어린다.

감사는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란다. 없는 것을 불평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받은 것을 세어보며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무던히 참아줬던 많은 분들의 고마운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말 못하는 저울에게도 감사했던 딸아이의 마음으로 내려가 보니 그곳엔 수많은 보석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고맙고 떨리는 설렘으로 주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감사들을 하나씩 주워서 감사 바구니에 담아본다.

그리곤 그 넘치는 ‘감사 바구니’를 안고 목욕탕의 저울 위로 올라가련다. 눈을 감아도 정확히 보이는 ‘행복감사 무게’가 늘어가도록. 이 가을엔 더 열심히 사랑하고 감사하리라. 생명 없는 저울까지 숨을 쉬고 웃을 수 있도록….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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