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이와 같은 때에

2008-11-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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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 중에 에스더(Esther)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왕국의 아하수에로(Xerxes) 왕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삼촌인 모르드개의 손에서 성장한 그녀는,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로 간택되었고,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진 총리대신 하만의 음모에 의해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이 몰살위기에 처했을 때, 지혜와 용기로 하만을 처단하고 민족을 구해낸 인물입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흠모하여 많은 한인 부모들이 자녀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지난 주 월드비전 국제본부의 ‘Christian Commitment’ 부서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이 부서는 21세기를 사는 기독인들의 삶을 올바른 성경 해석을 통해 조명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부서입니다. 그 메일 속에는 이와 같은 때에(For a Time Like This)라는 제목과 함께 에스더의 삶이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자신의 민족을 살리려는 그녀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그 일을 행하기 위해 삼일간 금식하며 준비하던 모습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 상황을 위기에 처했던 유대인들의 상황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허리케인, 가뭄, 홍수 등의 끊임없는 자연재해, 전쟁, 기근, 곡물가 상승, 게다가 최근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금융 불안 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이들은 빈민, 그 중에서도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경제상황이 좋았을 때조차도 힘들었던 이들의 삶은, 현 상황에서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지던 도움의 손길이 중단되면 그들의 삶은 더 이상 연장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월드비전의 후원자들도 지금의 어려움 속에서 한시적으로 후원을 중지하는 분들의 수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저희들도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도움의 질과 양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해진 메일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우리 기독인들, 또한 월드비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기회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려운 시기에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더 많은 노력, 희생, 헌신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월드비전에 헌신한 우리가 할 일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월드비전에 입사하면서 가졌던 ‘초심’을 다시 일깨워주는 메일이었습니다. 20여년을 월드비전에서 일하고 있는 나조차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걱정과 근심, 두려움 속에서 활동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에 가슴을 쳤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어려움은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어려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어려움을 악화시킬 뿐, 아무 해결책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행사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고통 받는 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약 2,000년 전, 이 땅에서 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메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었습니다. “월드비전은 11월24일, 추수감사절기가 시작되는 그 주 첫날을 전 세계 월드비전 금식의 날로 선포합니다. 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가 민족을 위해 3일간 금식을 한 것처럼, 위기 속에 처해 있는 고통 받는 자들과 귀한 후원자들을 위해 금식과 기도를 통해 하루를 온전히 드릴 것입니다. 그것이 월드비전이 해야 할 최우선의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삼촌 모르드개를 통해 모든 유대인들에게 금식을 요청하고, 본인 스스로 금식에 들어가는 에스더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금식 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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