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 인고의 미학

2008-10-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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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공현진이라고 불리는 바닷가에 살던 친구들이 빛깔은 영롱하면서도 회색에 가까운 작은 구슬들을 가지고 오곤 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30여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때 가지고 놀던 것이 귀한 진주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진주는 그저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예쁘고 작은 돌멩이에 불과했지만, 누군가의 반지와 목걸이에 붙어 있는 진주를 볼 때마다 그때 친구들이 가지고 온 진주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그 작은 구슬들을 친구들은 ‘섶’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홍합 속에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진주조개에서만 진주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홍합이나 조개는 오랜 기간 고통 속에서 몸속으로 들어온 모래 등 이물질과 싸워야만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조개나 홍합이나 자기 몸을 찌르고 괴롭히는 이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딱딱한 껍질을 만드는 물질로 이물질을 오랜 기간 감싸고 감싸기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몸속에 진주를 갖게 된다는군요. 이때쯤 되면 진주는 더 이상 이물질이 아니라 홍합이나 조개와 한 몸이 되는 것이지요. 높은 경지에 계신 스님이 죽어서 종종 발견되는 사리도 내면의 깊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깊은 어둠을 뚫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진주가 아닐까요.

두레마을엔 지금 대추와 석류가 한창입니다.

유기농으로 생산된 열매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건 모양과 빛깔이 다른 과일들에 비해 아름답거나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과일을 먹기까지 수고한 손길들과 때로는 뜨거운 태양과 겨울의 차가운 바람 등을 온몸으로 견딘 나무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레가족들은 대추와 석류를 맛으로만 먹지 않고 모든 과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함께 먹는답니다.

미주리주 St. Luis에서 국제결혼하신 분들 중 고통당하는 삶의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받은 이들이 머물러 사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샘물교회(김민지 목사) 창립 7주년을 축하하는 집회와 예배가 지난 주일에 있었습니다. 창립 7주년을 기념하는 예배 도중에 그 곳 공동체 식구들이 특별찬양을 하였는데 노래하는 도중에 저는 눈물을 흘릴 뻔 하는 걸 겨우 참았습니다.

그들이 입은 아래옷은 각각 까만 옷이나 치마를 입었고, 위는 흰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초라한 모습이 슬퍼서가 아닙니다. 화음이 잘 맞고 아름답고 웅장한 목소리에 놀라서도 아닙니다. 얼굴은 표정이 없고 까칠한 모습이지만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 한 쉼 내쉬듯 부르는 “이제 나는 살았다”는 환희에 가까운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고난과 아픔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지는 진주를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결혼하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병을 얻은 모든 이들에게 진주와 같은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주가 아름다운 것은 그 빛깔 때문이나 생긴 모양 때문이 아니라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참고 견디어 온 세월과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상처받지 않는 것들은 없습니다. 각종 동물들, 작은 풀잎에서부터 나무에 이르기까지 상처를 받거나 주지 않고 성장하는 것들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의 삶의 과정 속에서 생기는 어렵고 힘든 과정의 끝에는 진주와 같은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힘 있게 사시길 바랍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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