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시어머니의 병아리 그림

2008-10-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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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우리 집 작은 우체통에 매일 들러주시는 우체부 아저씨께서 웬일로 초인종을 누르셨다. 종종걸음으로 나가보니 벌써 우리 집 잔디밭을 벗어나셔서 작은 우체국 차에 타셨다.

나는 멀리서 웃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보니 아저씨께서 신발상자 만한 소포를 가져다 놓으셨다.
시어머니께서 보내어 주신 소포.


오늘이 남편 생일이라 남편의 선물이 들었을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아들 성준이의 양말과, 음악 CD와 내 선크림과 예쁜 스티커와 어머니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먼저 성준이가 보기 전에 예쁜 스티커는 나의 소중한 물건만 넣어두는 서랍으로 직행했다. 나는 이 나이에도 아끼느라 쓰지도 못할 이런 스티커를 좋아한다.

그러며 나였다면 절대로 못 살 로션을 바라보며 비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동안 늘 소포에는 그야말로 먹을거리나 다른 그 무언가가 들어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로 어머니께서 편지를 넣어주셨다.

처음에는 “성준이에게 쓰셨겠다” 생각하고, 성준이에게 읽어주려고 했는데 열어보니 나에게 이 며느리에게 쓰신 편지였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쓰신 어머니의 글을 읽으며 어머니의 마음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발견한 어머니께서 보내신 어머니의 그림. “사랑스런 성준아!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건강하여라. 성준이를 그리고 싶은데 인물화를 못 그려 병아리를 그려 보았다”라고 종이 끝에 쓰신 어머니의 그림.

왼편에는 모두 여덟 마리의 병아리를 부리와 눈의 각도를 생각하셔서 줄까지 그어 가시며 아주 열심히 그리셨다. 보통 각도를 생각하여 그은 줄은 나중에 지우는데 그 선까지 그대로 놓아두시고, 아마도 어머니는 병아리를 어느 동화책을 보시고 열심히 그리시느라 그 선을 지우시는 것을 잊으신 것 같았다.

게다가 오른쪽 귀퉁이에는 다른 동화책에 나올 법한 침대와 침대 위 작은 곰 인형 그리고 동화 속 주인공인 듯한 작은 인형이 드러누워 있었다. 그 그림을 정말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것이 보였다. 책상에 아니면 거실 탁자에 아니면 식탁에 앉으셔서 동화책을 옆에 두고 열심히 조심조심 여덟 마리의 병아리를 그리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손자를 그리고 싶으셨던 어머니. 그러나 그 마음을 대신하여 어머니는 어느 동화책에 나올 법한 병아리를 가득 그리시고도 마음에 무언가 허전하셨는지 침대와 침대 위 곰돌이 인형도 그리시고 다른 주인공 인형도 그리셨던 것이다. 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아직까지 그 연세에 항상 소녀 같은 마음과 소녀 같은 작은 스티커들을 보내주시는 어머니. 혼자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 그림이 너무 소중해 액자에 넣어두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가 시어머니께 이런 여덟 마리 병아리 그림을 받을까”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고 또 보고 나는 성준이보다 시어머니의 그림을 더 좋아하며 보았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에게도 어머니의 사랑스런 그림을 보이며 다시 한 번 웃었다. 너무 좋아서. 간만에 너무 좋아서.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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