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0-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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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힘으로 사세요

지난주에 또다시 엄청난 비보를 접했다. 연이은 자살로 한국사회 전체가 술렁이는 것을 보고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쓰고자 한다.

별 걱정 없이 남부러운 것 없이 살던 나에게 승욱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어디나 수군거리는 소리 “쯧쯧쯧… 젊은 엄마가 무슨 죄를 졌기에…” 동정 어린 눈과 곱지 않은 시선이 나를 무덤 속으로 가두기 시작했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를 몇 달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때 한 가닥 나의 소망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는 것이 유일함이었다.


승욱이가 신생아 때부터 서울의 S병원에 소아안과를 다니며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던 때가 있었다. 아이가 돌쯤에는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견을 말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물은커녕 빛조차도 보지 못했다. 난 점점 절망스러웠고 정기검진 가는 날이 마치 대학교 합격자 발표 가는 것 마냥 떨림으로 다가왔다.

승욱이가 백일이 조금 넘었을까… 그 날도 난 소아안과가 있는 소아병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 돌을 갓 넘긴 큰아이가 나의 손을 잡아끈다. “풍선, 풍선 있네.” 겨우 말을 하는 아이가 풍선을 보고 사달라고 손짓을 한다. 병원에 오면 2~3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기에 승욱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난 큰아이의 손을 잡고 풍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풍선 자동판매기 앞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수익금은 소아암 환우에게 갑니다.” 몇 달을 다니는 동안 소아안과 쪽으로만 신경을 쓰고 걸어 들어갔지 그 병동에 소아암 병동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큰아이에게 파란 풍선을 하나 뽑아주니 뒤에 휠체어에 앉은 아이가 엄마에게 자기도 사달라고 손짓을 한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얼굴을 다 덮는 하얀 마스크에 얼굴은 검게 변한 아이가 힘없이 앉아 있다. 아이의 엄마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얼굴이 흙빛이다. 겸연쩍은 얼굴로 “아이가 많이 아픈가 봐요” “네, 암이에요” 머뭇거리는 대화 뒤편에 아이들은 나란히 풍선하나씩을 들고 웃고 있다. 건강한 아이와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아이의 얼굴은 그저 맑기만 하다. 그 후로 아이의 엄마를 두어 번 더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은 엄마도 아이도 많이 지쳐보였다. 난 이름도 모르는 아이에게 풍선 하나를 뽑아줬다.

다른 날 같으면 웃어줬을 아이가 표정이 없다. “학교 갈 나이까지만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한 달만 더” 하루하루 삶의 끈을 붙잡고 있던 아이를 그 날 이후로 병원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 후로 일년 가까이 그 병원을 들어설 때마다 풍선을 큰아이에게 사주며 생각했다. 그래도 난 감사하네. 승욱이가 생명을 다투는 중환자도 아니고 눈만 못 볼뿐인데. 그때부터 마음에 감사가 자리 잡으니 우울함이 많이 사라졌었다.

난 승욱이가 전맹이란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귀마저 듣지 못한다고 했을 때도 인생의 여러 번의 고비가 찾아왔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승욱이와 나만 이 세상에 없으면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으면 난 결론도 없는 벼랑 끝으로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파란풍선을 들고 있는 아이와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오늘 하루도 병원에서 이 하루를 힘들게 겨우 넘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물론 우리아버지도 우리 형부도 오늘을 얼마나 살고 싶으셨을까.

지금 이 순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분들은 한번 생각하고, 또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또 그 생명이 목적 없이 이유 없이 이 땅에 남겨진 것이 아닌데 점점 더 자살률이 늘어가고 있다. 또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공인들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모습에 너무 안타까워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나쁜 생각을 혹시 하고 있다면 죽을힘으로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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