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허구의 연기와 진실의 표정

2008-10-03 (금)
크게 작게
알만한 분은 다 아시지만, 연극 분야에 ‘스타니슬라브스키 방식’(The Stanislavsky Method)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배우의 심리묘사 연기방식의 대명사가 된 관용어입니다. 이것은 러시아의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본명 콘스탄틴 세르게이비치 알렉세예프)가 19세기말 러시아 연극의 관례였던, 배우들이 늘어놓는 연설조의 장광설과 과장되고 틀에 박힌 연기의 매너리즘을 깨고 선보인 심리묘사 연기를 말합니다. 배우가 연극을 대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물의 성격과 순간마다의 심리적 변화를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행동으로 정교하게 묘사함으로써 연극의 사실감을 극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극작가 단첸코와 함께 모스크바 예술극단을 창설하고, 배우들에게는 완전무결한 연기를 집요하게 요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체호프의 1차 공연에 실패한 희곡 ‘갈매기’를 작가의 사양에도 불구, 끈질기게 설득해서 다시 무대에 올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 공연은 희곡이 시시했던 게 아니라 연기가 문제였다는 게 밝혀지고, 소위 스타니슬라브스키 방식이 각광을 받는가하면, 체호프가 다시 대작가로 부상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스타니슬라브스키 방식은 한 세기를 넘어 오늘의 연극 영화배우 지망생들에게도 여전히 요구되는 연기수업의 매우 중요 메소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요? 요즘에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표정 관리’란 말이 폭넓게 쓰입니다. 이 표정 관리란 자기 자신의 성격과는 달리 사회생활을 위해 자기 표정을 연기한다는 말입니다. 무뚝뚝한 성격, 혹은 고민스러운 내적 갈등을 숨기고 그 타인과의 친화력을 발휘하여 왕따나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현대인들의 표정 연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표정 관리’는 재계와 정치계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재벌들과 정치인들의 얼굴 표정이 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가는 때로는 회복불능의 손실과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공인, 혹은 지도자는 ‘표정관리’에 매우 섬세한 노력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허구의 연극이 사실적인 연기를 추구하는 반면, 현실생활의 사회활동에 오히려 연극적 허구, 표정관리가 요구되니 참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정치에서 이 표정관리에 탁월한 지도자의 나라는 중국입니다. 미국정부의 한 중국담당 외교관은 협상 테이블에서 중국과의 협상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가장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나라는 아마 북한일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말과 현실이 다르고 표정과 속마음이 다릅니다. 그 가장 두드러진 현장이 핵문제를 둘러 싼 ‘6자회담’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핵 포기를 미끼로 주변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얻어내려고 가장 허구적인 표정관리로 일관해 오고 있습니다. 극단적이고 공개적으로 미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 뒷로는 구걸의 손길을 내미는 식입니다. 말하자면 북한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방식을 가장 역설적으로 사용한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남용은 언제나 부작용을 불러 옵니다. 그런 국가는 양치기 소년처럼 언젠가는 위기를 만나게 되고 그 위기를 타개할 힘이 없을 때 불행한 사태를 당하게 됩니다. 최근에 북한은 핵 검열을 ‘강도식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고, 다시 핵 개발을 시작하겠다고 하면서 한국 정부에 협상을 재개하고 재정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위협적인 제스처로 남한의 지원을 얻어내겠다는 것입니다. 행위와 진실을 마구 뒤바꾸어서 상대방을 당혹하게 하는 수법도 자주 쓰면 약효가 떨어지게 됩니다. 북한도 내 민족이라고 생각할 때 낡은 표정관리 방식으로 일관하는 그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